오늘 한겨레 신문 '왜냐면'에 실린 글입니다.
중언부언 써보냈는디, 대~~~폭 줄여서 실어줬네요.^^
****************
해외입양인 모임이 결성되고, 해외입양의 문제점과 미혼모 복지체계의 후진성이 지적되고 있다.
입양부모로서 이를 매우 의미 있는 일로 받아들인다.
내가 입양한 아이의 생모와 관련하여 늘 해결하지 못한 빚을 가슴에 지니고 살기 때문이다.
입양 과정에서 미혼모들의 선택 기회가 원천적으로 막혀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분명 미혼모 복지 개선은 시급한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제기되고 있는 해외입양 비판의 이면에, 국내입양 활성화에 대한 그릇된 비판이 담겨 있어 이를 짚어 본다.
현재 시설에 있는 수많은 아이들의 존재는 어떤 정책이나 비판 이전에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엄연한 현실이다. 해외입양인의 정체성 문제 등이 거론될 때, 시설에서 자라 만 18살이 되면 어떤 대책도 없이 홀로 사회로 나가야 하는 수많은 아이들의 목소리는 묻혀 있다. 이들은 연대를 결성할 힘도, 하나의 목소리를 낼 여유도 갖지 못한 채 우리 사회의 그늘에서 소외된 삶을 산다.
미혼모 복지 개선과 입양 활성화 대책은 함께 가야 할 공존의 대상이지, 어느 한쪽을 살리기 위해 다른 쪽을 깎아내려야 하는 적의 개념이 아니다.
해외입양인을 후원하는 김도현 목사는, 입양 활성화가 아동 복지라는 국가적 과제를 국민 개개인의 과제로 떠넘긴 것에 불과하다고 하며 다음과 같은 비유를 하였다.
‘한 지방에서 저수지의 수질이 나빠져 물고기가 죽어 나오는 것을 보고, 지역민이 죽어 나온 물고기를 비료로 만들어 쓰면 좋다고 캠페인을 한다면, 그 일은 개인으로서는 잘하는 일이라고 칭찬해줄 만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 지역의 군수가 나서서 죽은 물고기로 비료 만들기 캠페인을 군의 사업으로 책정해서 펼친다면 그것을 잘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저수지의 수질을 검사하고 원인을 규명해서 더는 죽은 물고기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하는 일이 군수가 해야 할 일이다.’
나는 이 비유에서 인권을 말하는 운동가의 자가당착을 본다.
썩은 물에서 물고기가 죽어 나온다면 가장 시급한 일이 무엇일까? 적어도 물고기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자라면, 수질 개선 대책과 함께 물고기들을 맑은 물로 옮기는 일을 대대적으로 개시할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똑같은 가치를 지니고 병행해야 하는 일이며, 캠페인이 필요하다면 함께 시행해야 하는 두 개의 기둥이다. 입양은, 죽은 물고기로 비료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살아 있는 물고기를 맑은 물로 옮기는 일이다.
해외입양인 모임을 만든 이가 ‘입양의 날은 반 아동의 날’이라고 한 것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당사자가 아니라면 인종과 환경이 완전히 다른 곳으로 입양된 해외 입양인의 아픔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는 없다. 정부의 입양 활성화 정책이, 근본적인 미혼모 복지 문제를 은폐하는 구실을 했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만 비판을 하면 된다. 입양 자체를 최소화할 가치로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기엔 현재 부모 없이 시설에서 자라는 수많은 아이들이 엄존하고 있지 않은가?
미성년자인 미혼모라면 자신의 미래를 접은 채 아이를 키우기에는 사회복지나 경제적 지원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 또한 이혼이나 부모의 학대로 방치된 아이들도 친권 관련 법에 묶여 새로운 가정으로 입양될 기회를 잃은 채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우리가 이런 논의를 하고 있는 순간에도 보육시설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생의 시계는 매우 빠르게 가고 있다. 전문가의 이론에 따르면 생후 6개월만 지나도 엄밀히 말해 ‘연장아’ 입양에 해당된다고 한다. 연장아란 이미 자의식이 싹트고 낯가림이 시작되어 입양된 후 애착관계 형성에 힘든 과정을 겪는 경우를 말한다. 생후 7개월에 입양한 나의 아이도 애착관계 문제로, 현재 세 돌이 가깝지만 놀이 치료를 받고 있다.
어느 입양아가 ‘엄마, 입양이란 말이 없어질 때까지 아이들을 입양해 주세요’라고 한 말의 뜻이 무엇일지 생각해보라. 해외입양이 하나의 산업이 되어 부적절한 거래로 전락했다면 이를 비판하고 개선해야 한다. 그러나 시설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되는 그날까지 국외든 국내든 아이들에게 가정을 찾아주는 일은 엄격한 기준 아래 계속 시행되어야 한다.
또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단어 선택이 있다. ‘친부모’란, 아이를 낳은 부모가 아니라 아이와 함께 가장 가까이에서 사랑을 나누는 현재의 부모이다. 낳은 부모는 ‘생부모’라 칭해야 하고,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입양부모가 친권을 가진 ‘친부모’이다. 부모의 개념에도 진짜, 가짜를 말해야 하는 우리 사회 인식의 척박함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려.
외가 친가처럼
친 이란 단어. 그렇게 써야 맞네.
내가 외할머니를 진짜의 진할머니라고 했듯이
가까울 친은 현재 사랑을 나누고 보살펴주는
부모에게 써야 맞는구먼.
그대, 조금씩 나아질거니.
기운 빼지 말고...좋은 세상 만들어가며 살자고.
자기 생각하면 내 맘이 푸근하고 든든하고 좋아.
진할머니랑 남동생 찬민이 해민이 은주씨
두루 건강하고 웃으며 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