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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없고 헛소리만 (김선주 칼럼)

2009.03.03 16:28

약초궁주 조회 수:1292 추천:159

<김선주 칼럼> 말은 없고 헛소리만 

 

 2009년 2월 9일자  한겨레 신문~~~


몹시 울고 싶은 날이면 영화관에 간다. 슬프다고 소문난 영화를 찾아서. 평일 대낮에 극장에 가면 관객이 별로 없다. 한 구역을 통째로 차지하고 앞좌석에 발을 걸치고 영화 속의 슬픔에 감정을 이입하고 내 설움을 얹어서 실컷 운다. 하염없이 울고 나오면 마음의 긴장도 분노도 슬픔도 해소된다.

<워낭소리>도 주변에서 슬프다고, 눈물 난다고, 보증을 해주어서 보러 갔다. 평일 대낮인데도 매진이었다. 소문이 소문을 낳아서 독립영화사상 관객 동원 최고의 기록을 깨뜨린 지 오래고 7개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가 지금은 70여개로, 다시 150개로 확산되어서 앞으로 관객 수가 50만이 될지 100만이 될지 모른다고 한다.

영화는 슬프고도 재미있었다. 소와 함께 고된 노동을 하고 9남매를 키우고 늙어가는 노부부의 이야기다. 지금은 노동을 하고 살 필요는 없지만 농사짓고 풀 베고 소 먹이고 사는 것밖에 모르는 부부는 습관처럼 일을 하고 습관처럼 티격태격 타박한다. 할아버지는 아파 아파 하면서도 일을 한다. 할머니는 싫어 싫어 하면서도 할아버지와 소를 먹이고 밭을 매고 소죽을 쑨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생로병사를 거치는 과정, 생명의 덧없음은 저절로 눈물샘을 자극한다. 소는 죽을 지경에 이르러서야 노동에서 벗어났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노동도 삶이 다하는 날까지 이어질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울고 나왔는데도 미진했다. 생명을 다하고 죽는 것은 어찌 보면 행복한 죽음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분노나 원망이 없는 깨끗하게 정화되는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아직 살아보지도 못하고 삶의 희로애락을 느끼기도 전에, 기운이 펄펄 남아 있는데도 그냥 죽는 죽음은 억울하고 서럽고 원망스럽다. 요즘 내 마음의 상태가 그런 진한 눈물을 흘리고 싶었던 탓인가 보다. 소의 눈에서 진한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히는 것을 보면서 지금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용산 철거민 가족들의 눈물을 생각했다. 생활고로 목숨을 끊는 젊은 가장을, 3년 동안만 살고 고기 값으로 팔려나가는 소를 생각하며 마구잡이로 취급되는 생명에 대한 분노 같은 것으로 엉엉 소리내어 울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글쓰기가 이처럼 힘든 시대는 내 생전에 없었던 것 같다. 평생 글 쓰는 것을 업으로 삼아왔는데도 글쓰기가 몸이 오그라들 정도로 힘이 든다. 몇 년 전에 글이 세상을 한 뼘도 바꾸지 못하는데 글은 왜 쓰는가라는 탄식을 한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새파란 후배가 글이 언제 세상을 바꾼 적이 있나요. 그저 위안을 줄 뿐이지요. 시들하게 답했다.

 

당시에도 아연했지만 그때의 탄식이 사치로 느껴질 만큼 지금은 글쓰기의 무력함을 절감한다. 역사학 교수에게 물었다. 역사 공부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 세상은 역사의 잘못을 반복하는데. 역사학자는, 원래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이지요 … 그러지 말자고 가르치는 것이 역사지요라고 힘없이 답했다.

더 이상 말이 말이 아니고 글이 더 이상 글이 아닌 세상이다. 말에는 마음이 담겨 있어야만 한다. 마음이 담겨 있지 않은 말은 그냥 소리일 뿐이다. 헛소리다. 대통령이 법과 원칙을 말하고 기본에 충실하겠다고 하는데 그 말이 그냥 소리로 들리는 것은 거기에 마음이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말 아닌 말에 대해, 말 아닌 말로 돌아가는 세상에 대해, 말을 하려니 공허하다. 헛소리에 정면으로 대응하자니 힘이 빠진다.

용산 철거민 참사와 관련해서 검찰 발표가 나왔다. 철거민들과 용역회사 직원들이 범인이란다. 이것도 말일 뿐 마음이나 진실이 담겨 있지 않다. 헛소리와 짜맞춘 각본에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따지려 드니 헛심만 든다. 다 그만두고 그냥 어디 가서 실컷 울고 싶다.

 

~~~~

 

어제 노는 월요일.

전화도 받지 않고 시내를 걸었다.

나름대로 종로올레.

 

종각역에 반디 책방 영풍문고 거쳐서

대학로에 가서 칼국수와 동네한바퀴 눈팅

 

정릉쪽으로 흐느적 거리며 걷다보니

씨쥐브이. 눈에 뛴다.

 

워낭소리 표를 사놓고 성신여대 상가에서

옷과 화장품 가게를 둘러봤다.

 

난 춥다고 빨래감으로 잠바를 다시 껴입고

모자로 무장을 했는데.

여긴 봄이다. 노랑 분홍 레이스 팍락팔락.

 

포장마차표 커피를 한잔 사서 마시고

워낭소리를 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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