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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의 낯선 사이]“죽으면 그만인데 이래 살면 뭐하겠노”정희진 | 여성학 강사

(경향신문에서 퍼왔습니다.
워낙 글을 잘쓰기도 하려니와 .책을 씹어 먹어 소화시키는
독서가라서 존경하고...심지어는 사랑을 고백하고 싶어지는
정희진 샘
저서로는 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처럼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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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는 공초(空超) 오상순 시인을 핑계 삼아 평생 하루 세 갑 담배를 피우셨다. 늘 어머니와 싸우셨지만 같은 말로 대응하셨다. 공초 선생은 폐암으로 죽어가면서도 담배를 즐기며 죽음에 의연했다는 것이다. (시시한 삶을 초월한) “죽음에 의연”, 이 표현을 특히 강조하셨다.




나를 포함해 과자, 술, 담배처럼 건강에 좋지 않은 기호 식품을 즐기는(중독된)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얼마나 사는 인생이라고, 이 맛있는 것을 참아서까지….” 내 친구는 식사 대신 케이크와 도넛, 캐러멜 마키아토 커피를 달고 산다. 당연히 비만이다. 먹을 때마다 죄의식과 자기혐오를 호소하지만 언제나 결론은 “내 스트레스 알지? 나를 위로하는 것은 얘들뿐”이라고 한다.


중독자의 심정, 비슷할 것이다. 나 역시 먹을거리에 대한 집착이 있고, 비슷한 논리로 개선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 외롭고 지루한 노동의 연속, 취미도 이동도 친밀감도 없는 일상에서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다 보면, 자극적인 먹을거리에 대한 기대 외에는 시간을 견딜 방법이 없다.


소설가 정찬의 ‘은빛 동전’이라는 단편이 있다. 1960년대 가난한 시절. 주인공의 어머니는 열 식구의 생활을 꾸리느라 집안일에다 삯바느질과 찹쌀떡 장사까지 한다. 가난의 고통과 더불어 고부 갈등, 아니 시어머니로부터 이유 없는 학대까지 당하고 있다. 현모양처 규범에 충실했던 어머니로서는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죽으면 그만인데 이래 살면 뭐하겠노”라며 일탈을 감행한다. 한 푼이 절실한 시절, 아들만 데리고 중국집에 가서 탕수육을 시킨 것이다. 그날은 어머니 인생의 첫 번째 일탈. 두 번째는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자 자신을 괴롭혔던 시어머니에게 극도의 거부 반응을 보인다. 어쨌든 그날 어머니에게 탕수육은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어루만져본 최대의 유혹이었고 그 유혹을 감행한 일탈이었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 자기연민에 울었다. 감히 그리고 맥락도 없는 비교지만, 나의 경우는 “이렇게 살면 뭐할까, 어차피 죽을 건데”라며 시작한 일탈이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중독자가 되어버렸다. 소설로 치면, 없는 살림에 매일 탕수육을 먹고 있는 셈이다.

중독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대단히 영광스럽거나 의미로 충만한 인생은 드물다. 먹고 싶은 것을 참고 러닝머신 위를 달리며 자기 계발에 매진하는 인간도 있지만, 보통 사람들은 기호 식품으로 일상을 버틴다. 먹는 게 건강에 나쁜가, 참는 스트레스가 더 나쁜가 갈등하지만 대개는 후자의 판정승. 특히 금연은 쉽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친구들의 금연 결심, 금단현상 호소, 실패, 흡연을 반복하는 ‘간증’에 이력이 났다. 다이어트와 금연 중 무엇이 더 힘드냐고 물으면 다들, “둘 다”란다.

행위에 대한 중독이든, 특정 성분 중독이든 갱생은 쉽지 않다. 중독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는 간단하다. 일시적이어서 그렇지 ‘약효’가 있기 때문이다. 몸은 낯선 행복보다 익숙한 불행을 더 좋아한다. 익숙함은 인간사의 대표적 부정의다. 적응(중독)된 몸은 삶의 방식이자 양식(糧食)이다.

이처럼 중독은 무조건적인 악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의미를 추구하는 삶의 여정에서 만난 엉뚱한(물론 때론 폭탄 같은) 친구다. 누구나 대하소설을 쓰거나 마더 테레사처럼 살다 갈 수는 없다. 몰입할, 헌신할, 절절히 사랑할 대상을 찾는 데 실패하면, 사회가 권하는 손쉬운 대상이 공허를 메워준다.



이 글의 요지. 나는 비흡연자지만 담뱃값 인상과 그 논리에 반대한다. 흡연자 입장에서는 경제적 부담도 문제겠지만, 나는 이 정책의 발상과 인간관이 더 심각한 사안이라고 본다. 기호품 중독자의 몸을 볼모로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의지가 인간의 품격이자 ‘수준’을 가늠하는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지박약을 매일 인정하고 자책하는 국민이 많다면, 이 역시 공중 보건에 좋지 않다. 그리고 정확히 말하면, 중독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필요의 문제다. 금연 여부는 본인의 판단에 달려 있고 그래야 성공한다.

그러나 ‘의지박약의 흡연자’를 낙인 삼아 세계적 추세의 금연에 대처하는 방식은 안이하다. 박근혜 정부가 담배가 주는 만큼의 위안을 줄 자신이 없다면, 담배 가격을 그대로 두기를 바란다. 익숙함이라는 인간 본성을 이용한 가격 올리기, 비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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