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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눈에 딱 들어온 한국일보의 칼럼.
중부대 박영규 초빙교수님의 기고문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좋아하는 소설인데
카잔차키스의 성자의 병.
이제야 알게 되었다.

정신이 몸에 미치는 영향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새해..성자의 병도
공주의 병도 다 앓지말고
평화롭고..자연스럽게...걷는 속도로
조금만 아프고 많이 건강하게  살아보길



< 성자(聖者)의 병과 공주의 병 >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특이한 경험을 한다. 39세 때 일이다. 우연히 들른 극장에서 그는 옆자리에 앉은 여인에게서 묘한 매력을 느낀다. 평소에는 여자의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수줍음이 많은 샌님이었지만 어쩐 일인지 그날은 그가 먼저 말을 건넸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던 두 사람은 연극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중간에 극장을 나온다. 대화와 산책으로 시간을 보낸 후 카잔차키스는 여인에게 호텔에 가자고 제안한다. 아내가 있었고 철저한 금욕주의자였지만 그날은 마귀에 홀린 듯 대담하게 유혹의 검은 손길을 먼저 내밀었다.


여인은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지만 그날 저녁은 곤란하니 그 다음날 저녁에 호텔로 찾아가겠다고 말한 후 집으로 돌아간다. 호텔로 돌아온 카잔차키스는 여인과 나눌 운우지정의 행복한 순간을 상상하면서 흥분되고 들뜬 마음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그는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란다. 입술과 턱은 퉁퉁 부어 올랐고 얼굴에는 습진 비슷한 반점 같은 것이 여기저기 돋아 있었다. 여인에게 즉각 기별을 보내 약속을 다음날로 미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증상은 심해진다. 붕대를 칭칭 감은 채 병원을 찾았지만 의사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갸우뚱할 뿐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다.


그러다가 그는 우연히 프로이트의 친구이면서 심리학자였던 빌헬름 슈테겔을 만난다. 슈테겔은 카잔차키스의 최근 행적과 로맨스를 들은 후 그의 병이 ‘성자(聖者)의 병’이라고 말한다. 동굴 생활을 했던 중세의 수도승들에게 흔히 나타났던 병인데, 현대인에게 나타나는 것은 이례적이라면서 카잔차키스의 내부에 흐르는 남다른 영적 에너지 때문에 육체에 트러블이 생긴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즉시 빈을 떠나라고 충고한다. 열차를 타고 빈을 출발한 지 한 시간도 안 돼 그의 얼굴은 씻은 듯이 낫는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카잔차키스가 성자의 병을 치유해나가는 과정을 기록한 수행록이다. 그는 크레타 바닷가에서 조르바라는 인물을 만나 자유를 얻고 스스로를 힐링한다. 붓다에 관한 사색에 매달리면서 조르바식의 원형적 삶을 경원시하던 그가 자유로움을 얻게 된 계기는 세상과의 화해였다. 자아를 모두 벗어던지고 세상과 민낯으로 마주하는 순간 그를 짓누르던 정신의 고통은 사라졌으며 성자의 병도 완벽하게 치유됐다.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과 조현민 전무에게 세상은 자신들의 눈 아래에 존재하는 미생들이다. 완생은 오너집안 태생의 자기들밖에 없다. 갑을 관계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기에 세상은 그냥 아무렇게나 짓밟아도 된다. 조 전 부사장과 조 전무는 두 사람 다 ‘공주의 병’이라는 정신적 덫에 빠져있다. 공주의 병은 성자의 병과 심리학적으로 볼 때 본질이 같다.


세상과의 철저한 단절, 분리주의가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다. 성자의 병은 육체를 하찮은 것으로 취급하는 극단적 정신우월주의에서 비롯된 것이고, 공주의 병은 갑과 을의 관계를 절대적 지배와 복종의 권력관계로 인식하는 오만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비행기를 돌리고, 승무원을 내쫓는 것은 절대 권력을 가진 갑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땅콩회항 사건이 발생한 후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터져 나온 각종 파문들은 카잔차키스의 얼굴에 나타난 트러블과 같다.



조 전 부사장이 구속된 것은 자업자득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게 된 것은 사건의 심각성과 민심의 무게를 가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주의 병을 앓았던 지난해 조 전 부사장의 나이는 39세였다. 카잔차키스가 성자의 병을 앓았던 때와 똑같다.


시간이 지나면 조 전 부사장은 감옥에서 나올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나와도 마음의 벽을 깨고 자유로움을 얻지 못하면 감옥에 갇힌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진실로 세상과 화해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공주의 병은 치유되지 않는다.

대한항공의 정상화도 어렵다. 문명의 발상지 크레타에서 카잔차키스가 세상과 화해함으로써 성자의 병을 치유했듯이 조 전 부사장과 대한항공의 오너들이 고 조중훈 회장의 창업정신으로 되돌아가 공주의 병을 치유할 수 있기 바란다.


박영규 중부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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