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은 더욱 뜨겁다. 원자력 발전소 시험 성적서를 위조할 정도로 타락한 원전 마피아 덕에 ‘전력 보릿고개’를 앓고 있다. 어디 가나 뜨겁다. 이년 전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유출 사고도 남의 일이 아니다. 방사능 오염 여파로 기이한 물체가 발견되고, 후쿠시마 유령 도시화 괴담도 들린다.
폭염을 앓으며 사라진 국가 기밀문건 공방으로 난리 통인 와중에 시원함을 넘어 써늘한 재난영화 <설국열차>가 도착했다. <괴물>로 이미 천만 관객을 돌파한 봉준호감독이 할리우드 배우들을 동원해 400억 원대를 넘어서는 거대 제작비로 만든 블록버스터이다. 규모의 경제학에 빠진 언론에선 흥행 수치 중계에 열을 올리고 있다.
꽁꽁 얼어붙은 지구…더위야 꼼짝마
그러나 수치를 넘어 인류와 지구생태계 문제를 함께 돌린 예술가들의 고뇌와 열정이 영화의 모태이다. 시나리오 작가와 만화가들이 유명을 달리하며 30여 년에 걸쳐 완성한 프랑스 만화 <설국열차>는 봉준호를 매혹시켰고, 올여름 의미심장한 피서를 즐겨보라고 달려온 것만 같다.
“결코 멈추지 않는 열차가 영원한 겨울을 광활한 백색 세상을 지구 이편에서 저편 끝까지 가로지른다.” 말풍선에 이런 문구를 달고 빙하기를 폭주하는 열차가 등장한다. “바로 1001칸의 설국열차이다.” 이렇게 설정된 만화는 칸 사이 이동이 불가능한 열차 속의 처참한 풍경을 재현해낸다. 상상력을 동원한 만화지만 현실을 깨우는 묘미가 숨어있다.
“만화는 단순히 웃음을 유발하는 장난질이 아니다.”라고 말한 오노레 도미에는 억압적 현실을 고발하는 통풍구 같은 그림으로 유명하다. 그의 대표작 <삼등열차>는 삶에 찌든 몰골로 웅크린 채 불편한 빈자들의 초상을 보여준다. 그는 이어서 <일등열차>도 그렸는데, 정장차림의 승객들이 장갑을 낀 채 서로 시선을 피하는 고독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탐욕스런 루이 필립을 비롯한 정치풍자화로 투옥까지 당한 그는 비탄스런 일상을 희화화한 거장이다. 열차칸 그림은 1860년대 차량 사이 통로가 열쇠로 잠기는 차별에 대한 비판적 고발이기도 하다.
열차 안의 세상은 결코 평등하지 않았다
영화를 보노라니 만화와 열차칸 그림들이 함께 밀려온다. <설국열차>는 절대 권력에 억압당한 지리멸렬한 열차풍경을 SF 판타지로 풀어나간다. 지구 온난화 해결책으로 79개국 정상들이 결의하여 살포한 CW-7은 빙하기를 가져온다. 얼어붙은 지구를 일 년에 한 바퀴 도는 설국열차만이 마지막 인류의 생존공간이다. 17년간 열차에 갇혀 사는 생존자들은 꼬리칸 빈자들과 앞칸 부자들로 나누어진다.
단백질 양갱으로 연명하는 꼬리칸 사람들은 앞칸의 필요에 따라 차출된다. 윌포드는 성스러운 엔진을 개발하고 돌리는 막강한 지도자이다. 생존 자체가 고역인 꼬리칸 승객들은 반란을 꾀한다. 단백질 양갱 속에 묻혀 커티스에게 전달되는 붉은 쪽지는 미지의 안내자이다. 커티스 일행은 보안설계자 남궁민수를 감옥칸에서 구출해 문을 열어젖히며 윌포드 제거를 위해 진군한다. 그들은 엄청난 살상을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의 자리를 지켜라, 질서를 지켜라, 균형이 중요하다.” 라며 호통을 치던 메이슨 총리를 인질로 잡는 성과도 거둔다.
우여곡절 끝에 커티스는 엔진실에서 윌포드를 만난다. 반란은 성공적인 혁명이 될까? 윌포드를 제거하면 살만한 열차 세상이 이루어질까? 특수효과로 무장한 SF판타지 재미가 인류 공존에 걸린 본질적 질문을 하게 만든다. 그런 궁금증은 빙하기의 마약이자 인화물질인 크로놀처럼 폭발력을 갖는다. 그런 점에서 SF판타지의 종말론적 상상력이 현실적 고통을 먹고 산다는 점을 절감하게 된다.
팁: <설국열차>의 단백질 양갱 재료가 ‘바퀴벌레’란 점에 주목하면 더욱 재미있다. 봉준호감독의 에피소드 구성 단편영화 <지리멸렬>(1994)에서 ‘바퀴벌레’란 장이 나오기도 한다. 이 단편영화는 이십여 년간 순행 질주하는 봉감독의 예정표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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