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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이 진자 당신일수는 없다..이명수

2013.07.02 18:30

약초궁주 조회 수:1362 추천:172

이명수의 사람그물] 명함이 진짜 당신일 수는 없다

등록 : 2013.07.01 19:09수정 : 2013.07.01 19:09

 
이명수 심리기획자

사단장 명함을 가진 아빠가 애지중지하는 대학생 아들이 조폭들에게 심하게 얻어터졌다. 분기탱천한 사단장은 예하 특공부대를 동원해 자기 아들을 두들겨 팬 조폭 일당을 분쇄하듯 응징했다. 아직 공개적으론 접한 적 없는 사례이니 그런 일이 있다고 가정하자. 화력의 규모와 무게감에서 권투선수 출신의 재벌 회장이 아들의 복수를 위해 동원했던 폭력배들과는 양적으로 질적으로 다른 차원일 게 틀림없다.

 

 

황당할 수도 있는 가정이지만, 우리 주위엔 그런 식으로 자신의 명함을 자기 욕망이나 감정배설의 도구로 쓰는 이들이 너무 많다. 사회생활을 하는 대개의 성인들은 본래의 자기와는 별개로 사회적 역할을 하나씩 부여받는다. 그게 명함이다. 명함은 사회적 역할의 한 상징이다. 나의 일부인 건 맞지만 나의 전부는 아니다. 그럼에도 본래의 자기는 다 휘발시켜 버리고 명함 속의 인물이 자기의 전부인 양 행동한다. 사회적으로 그럴듯한 명함을 가진 이들이 특히 그렇다. 자신의 명함에 개인적 욕망이나 감정을 투사하는 일을 하나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국정원장이란 명함을 가진 이가 남북 정상의 대화록을 공개한 이유는 야당의 끈질긴 공격으로부터 ‘국정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란다. 콧구멍이 두 개라서 숨쉰다. 국정원 명예의 알파와 오메가는 국익이다. 본래 국정원의 존재 이유가 그렇다. 경호실장이 적의 공격이 비열하고 잔인하다는 이유로 경호요원들의 안전을 위해서 경호 대상인 대통령을 적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시킨 것과 무엇이 다른가.
 

지난해 4월 대법원은 국정원과 관련해 박원순 서울시장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건에 대해 국정원 비판이 국가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며 소송을 제기한 정부의 행동이 옳지 않다고 판결했다. 국정원은 명예훼손 피해를 주장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국정원장이 공개적으로 국정원 명예 운운하면 안 된다. 그런 말은 국정원 내부 회식 자리나 국정원장이 사적인 자리에서 군대 동기들을 만날 때나 써먹을 말이다.
 
 

요즘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쌍용차 분향소를 철거한 자리에 조성된 기묘한 화단을 지키는 경찰의 현장지휘자가 그렇다. ‘내가 곧 법이다’라는 자세로 집회도, 노숙도, 침묵시위도, 연좌농성도 어떤 것도 금지한다. 그의 눈에 거슬리면 무엇이든 불법이 되는 형국이다. 자신에게 욕을 했다고 모독죄로 한 시민을 연행했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시민 수십명이 떼창으로 욕하며 우리도 연행하라고 항의하자 그제야 풀어준다. 그 후론 진압과 옥죔이 보복하듯 행사된다는 전언이다. 오죽하면 그 자리에 상주하는 한 해고노동자가 ‘공권력이 감정을 갖는 순간 동네 깡패 양아치랑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절규하겠는가.
 

공권력에 집행자들의 사사로운 감정이 실릴 경우 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나라의 기반이 흔들린다는 말은 그런 때 쓰라고 있는 말이다.
 

감옥에 있어야 할 사람이 몇년씩 호화병실에서 지냈다는 사실 때문에 숱한 이들의 공분을 자아낸 사모님의 외출은 의사·검사·변호사·경찰 등 그럴듯한 명함을 가진 이들이 자신의 개인적 욕망과 인연을 사회적 역할보다 앞세운 결과다. 우리 사회 곳곳에 12·12 사태 때처럼 공적 영역이 무력화되고 사적인 인연이나 욕망이 우선한다는 명백한 증거다. 그런 곳에서 정상적으로 살아남을 재간은 없다. 유일한 솔루션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금보다 더 그럴듯한 명함을 얻기 위해 각개약진하는 것뿐이다. 내가 그런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가야 한다면 그런 삶은 얼마나 불행한가.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이명수 심리기획자, 트위터 @mep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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