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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친구가 '도'닦는다고 인도가서....

2013.04.11 12:46

약초궁주 조회 수:1482 추천:168

“도 닦으러” 인도에 간다더니...

원 진숙

나이도 60이 다가오고, 수도생활 한 지도 따져 보니 35년.

 

이쯤에서 잠시 멈추고 내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남은 삶을 잘 준비하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져갈 무렵, 가족들에게서 연달아 가슴을 철렁 철렁 내려앉게 하는 소식이 들려 왔다, 내가 달려가 뭘 어떻게 해 줄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답답하게 먼 나라에서 지켜만 볼 게 아니라 쫓아가서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해야 할 것 아니냐고 충고 내지는 참견을 하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이것이 전혀 소용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옳지 못한 태도였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다).

 

 그리고 내 근심을 한국 친구들과 시원한 한국말로 나누고 그들의 조언도 듣고 싶었다. 내가 하던 일, 내가 남겨야 하는 빈자리를 생각할 때 차마 안식년 허락을 청하기가 어려웠지만, 관구장님이 너무도 잘 이해하시며 선뜻 허락을 주신 덕분에, 1년은 어렵지만 6개월의 안식년을 얻게 되었다.

 

우선 한국에 가서 엄마 곁에서 석 달을 지낸 후, 예상했던 대로 모든 것이 역부족이고 아무것도 해결해 줄 수 없음을 가슴 아프게 절감하며 한국을 떠났다. 그리고 나머지 석 달을 지내러 인도로 갔다. “웬 인도?” 하는 친구들에게 “응, 도 닦으러...”라고 농담 반 진담 반 대답을 했었다.

 

프랑스인인 우리 수도회 창립자가 여러 가지 우여곡절 (이를

우리는 하느님의 섭리라고 부르거니와) 끝에 인도에서 첫 수녀원을 시작했기에, 인도가 우리 수도회의 고향이랄 수 있고, 창립자의 자취가 남아 있는 수녀원들이 여러 개 있어 순례지 역할도 하고 창립자의 영성에 대한 세션도 이곳에서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나는 이 세션에는 관심이 없었다. 다

 

만, 그 옛날 고통과 좌절이 새로운 탄생으로 바뀌었던 이 뜻깊은 장소에서 석 달을 지내고 싶었을 뿐이다. 이 수녀원이 닐기리 산 꼭대기(2300미터)에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주위에 호수가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이 산중에서 침묵하며 기도하고 싶었다. 이 작업은 구태여 인도가 아니라도 이태리의 아씨시 수녀원에 가서 해도 되겠지만, 어떤 변화를 원할 때 환경 자체도 아주 다른 환경에 들어가 보는 것이 좋다고 알고 있었기에,

 

 내가 지금까지 한 경험과 아주 다른 것들을 만나게 해 줄 인도를 선택했다. 치안 상태가 열악하지 않을까, 말라리아에 걸리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이제 곧 환갑인데 지금 아니면 이런 모험을 언제 해 보랴 하며 용기를 내었다.

그런데,

싼 비행기 고르느라고 한밤중에 인도에 도착한 것부터 시작하여, 거기서 목적지까지 밤차를 타야 했던 것(내가 탄 칸에 여자는 나 혼자뿐이었음!!), 그리고 도착한 후 인도 관구장님과의 만남 등이 나를 뜻밖의 상황에 처하게 했다. 여기서는 내가 당연히 세션 때문에 온 것으로 생각하고, 3주 후에 세션이 있으니 세션 참석자들이 다 도착할 때까지 관구 본부에 있으면서 영어 공부를 좀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는 게 나쁠 것은 없었지만, 빨리 산 속으로 가고 싶은데 그 덥고 먼지 많은 한길 가 수녀원에 있어야 하는 것이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나 모기가 물어대는지 잠시도 편한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영어 개인 지도 선생님까지 찾아주고 고맙게도 차까지 대절하여 나를 이리 저리 데리고 다니며 구경을 시켜 준 덕분에, 영어도 좀 늘고 인도 사회를 일부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교통 상황이 하도 아수라장 같아서 한번 나가는 것이 목숨을 건 대모험이긴 했지만.

 

 

힌두교 사원에 가서 맨발로 안에까지 들어가 보기도 하고, 힌두 명상원에 가서 좌선을 하기도 했다, 인도 사람들은 소음에 대한 감각이 없나 싶을 정도로 시끄럽기 짝이 없는 풍경만 보다가 그 명상원에서 완벽한 고요 속에 미동도 없이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며 놀랐다, 그리고 시장이나 백화점, 학교나 병원, 다른 수녀원들도 방문하면서 사람들의 생활 한복판에 들어가 보는 기회도 있었는데, 그러는 동안 이곳 사람들의 빈부의 차가 확연히 느껴졌다.

 

마침내 5개국에서 모인 15명의 자매들이 창립자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를 하는 것으로 세션이 시작되었다. 일 주일간의 순례를 마친 후 나머지 기간은 내가 애초에 오고 싶었던 우리의 첫 수녀원 즉 닐기리 산중에 있는 집에 와서 계속하게 되었다. 버스가 산을 어느 정도 올라왔을 때 갑자기 서늘한 기운이 느껴져 잠바를 꺼내 입었는데, 도착해 보니 거의 추울 정도로 기온이 달라 두꺼운 겨울 쉐타를 꺼내 입었다.

 

이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하늘이다. 일찍이 이토록 투명하게 푸른 하늘을 본 적이 없다. 아무리 보아도 감탄을 거듭하게 되는 참으로 깨끗하고 맑은 하늘! 고도가 높아 하늘이 가까운 데다가 하늘을 이렇게 자주 바라보면서 사니, 여기 있는 동안 하느님과 좀 가까워지려나 기대가 되었다.

 

 

유칼리 나무들이 이 깊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쭉쭉 뻗어 있고, 수없이 많은 차밭들이 산등성이를 감싸고 있다. 겨울에 피는 동백꽃과 포인세티아, 봄에 피는 꽃잔디와 데이지, 그리고 카네이션, 백합, 장미, 사르비아, 접시꽃, 제라늄에다 해바라기와 국화와 코스모스, 과꽃까지 온 계절 꽃들이 동시에 피어 있고, 꽃이 핀 나무들이 있는가 하면 단풍처럼 붉은 잎새들을 달고 서 있는 나무들도 있는 것이 신기하다.

 

 

내가 그리던 호수가 바로 수녀원 언덕 아래 보이기에 좋아라 하며 서둘러 가 보았더니, 보트 대여장을 거치지 않으면 호수 가까이 접근을 할 수도 없게 되어 있거니와, 그 주변에 무수한 노점상들과 쓰레기가 널려 있고, 호수가 무성한 숲에 맞닿아 있어 전혀 산보길이 없는 데다 물도 깨끗하지 않고 냄새마저 풍기고 있어 나를 몹시 실망시켰다. 호수를 끼고 한 바퀴 도는 산보를 매일 하고 싶었던 나의 설레던 꿈이 무참히 깨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언덕 위에서 바라보면 호수는 언제나 아름답고 평화롭다. 그래서 그냥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마음을 달랬다.

세션 참석자 자매들과의 생활은 아주 상큼하고 유쾌했다. 나는 그동안 창립자의 글을 많이 번역한 터라 이론적으로 새롭게 배우게 되는 것은 별로 없었지만, 자매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활 모습들이 아름답고 감동적이었고 지도자 수녀님이 매우 따뜻한 분이어서 삶 속에서 배울 게 많았다.

 

 

세션이 끝나고 모두가 떠날 때, 세션을 지도했던 수녀님이 나 혼자 두고 가는 것을 못내 서운해하시며, 뭄바이(봄베이)에서 다른 세션이 한 달 있어서 가시는데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잠시 망설임이 왔다. 가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것을 듣고 싶은 욕심이 일었다.

 

그러나 고독 속에서 얻을 게 더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접고 그냥 혼자 남기로 했다. 혼자 한 달을 더 여기서 지내며 내가 맨 처음에 생각했던 대로 침묵과 기도의 시간을 가져 보고 싶었다. 나 자신과 그리고 지난 모든 것과 화해하고 새로운 날들을 사랑으로 맞이할 준비가 되어 하산할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그래서 그 소망을 이루었냐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다.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폭격 맞는 것처럼 쏟아져 내렸다. 내 안에 이 많은 것들이 있었나 하고 놀랐다.

그러나, 차츰 나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 바뀌기 시작하더니, 마침내는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시각이 바뀌자 마음도 바뀌게 되었다.

 

평화롭고 기쁜 마음으로 하산을 했다. “행복 예감 !”

예수님의 말씀,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본다는 사람은 눈 멀게” 하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예리하고 깊이 있는 말씀을 마음에 새긴다.

주여, 당신의 빛으로 빛을 보게 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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