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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법을 넘어/이라영 (한겨레 펌 강추)

2012.08.30 17:19

약초궁주 조회 수:1621 추천:175

[야! 한국사회] 낙태, 법을 넘어 / 이라영

 

이라영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박사과정

근대국가는 주로 인구사회학적 관점에서 규제와 완화를 통해 재생산의 문제에 개입하는 경향이 있다. 산아 제한이 필요할 때는 피임과 낙태에 대한 접근을 쉽게 만들지만 출생률이 낮아지면 다시 규제를 강화한다. 생명권은 이렇게 국가의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되며 정작 자신의 몸으로 임신과 출산을 감내하는 여성의 삶은 부차적 안건으로 밀려난다.

 

 

그런데 재생산에 대한 국가의 지나친 간섭에 비하면 육아는 개인과 가정의 영역에만 맡겨진다. 출산은 했지만 사회적·경제적 이유로 양육이 어려운 이들은 결국 막다른 선택을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유일하게 외국에 대규모 입양을 보내는 국가임을 상기해 보자. 그토록 주장하는 생명권이 ‘출생 이후’의 생명에는 무심한 채 ‘출생에만’ 한정된다는 모순을 발견한다. 전쟁고아가 탄생하는 시기도 아니건만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에 태어난 아이도 지켜내지 못하는 입양 강국 대한민국에서의 생명권, 어딘가 이상하다.
 

지난 23일 헌법재판소는 낙태를 시술한 조산사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며 “태아에게도 생명권이 인정된다. 낙태를 처벌하지 않거나 가벼운 제재를 가하면 낙태가 훨씬 더 만연할 것”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태아의 생명권을 여성의 자기결정권보다 우선시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생명권은 소중하다. 그러나 재생산의 주체인 여성의 자기결정권도 존중받아야 한다. 그렇기에 생명권과 자기결정권이라는 두 기본권의 충돌 속에서 어느 한쪽을 절대적 우위에 둘 수는 없다. 그보다는 ‘왜 낙태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사회는, 낙태가 불법이라서 못하는 사회가 아니라 낙태를 굳이 선택할 필요가 없는 사회여야 하기 때문이다.
 

비혼모들의 경우 낙태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부도덕하다는 사회적 낙인과 경제적 어려움이다. 비혼부에게는 상대적으로 책임을 덜 전가하는 사회에서 비혼모들은 사회의 손가락질을 감당하기 어려워 결국 자식을 없는 존재로 만든다. 낙태를 하거나 입양을 보내거나. 이렇게 임신과 출산이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서만 펼쳐져야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이기에 그 제도 바깥에서 태어난 생명이 용인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에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한편 실제로 비혼자보다 더 높은 수치를 보이는 기혼자 낙태의 주요 이유도 불안한 경제적 조건이다. 유급 육아휴직조차 보장되지 않을 때 “둘째를 가질 것인가, 내 책상을 뺄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는 여성이 한둘이 아니다. 역시 ‘다산은 부의 상징’이라는 웃지 못할 우스갯소리는 양육비에 대한 부담으로 출산을 주저하게 되는 안타까운 현실을 반영한다.
 

또한 낙태 합법화 반대를 주장하는 쪽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합법화가 과연 낙태를 더 늘릴까. 보건복지부의 자료를 보면 한국에서는 적어도 한 해에 100만여건의 낙태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낙태가 합법인 프랑스에서의 연간 22만건보다 무려 다섯배나 높은 수치다. 프랑스가 한국보다 인구가 더 많은 것을 고려하면 인구 대비 낙태율의 차이는 훨씬 더 크게 벌어진다. 결국 낙태 합법화 여부가 낙태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끼친다고 보기는 어렵다.

가장 확실하게 낙태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법적 처벌이 아니다. 피임에 대한 교육과 지원을 강화하여 원치 않는 임신을 최소화하고, 혹여 아이가 생기더라도 사회적·경제적 불안감으로 불가피하게 낙태를 택하지 않아도 되는 육아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양성반응이 나온 임신테스트기를 손에 쥐고 낙태 외에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놓인 이들이 있을 것이다.
 

이라영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박사과정
 
이라영 선생에게 감사를. 한겨레도 고마움을~
부들부들 떠는 손들에게 쫄지마~외칠수 있으면 좋으련만. 넘 슬퍼 참혹해 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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