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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의 거문도 편지-풍어제 (경향 펌)

2012.06.15 11:29

약초궁주 조회 수:1653 추천:181

한창훈의 거문도 편지]풍어제
한창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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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유머 중에 이런 게 있다. 바늘로 코끼리 죽이는 법 세 가지. 하나, 죽을 때까지 찌른다. 둘, 한 번 찌르고 나서 죽기를 기다린다. 셋, 기다렸다가 죽기 직전에 찌른다.


섬에서 하는 풍어제는 첫 번째 방법을 쓴다. 고기 많이 잡게 해달라고 용왕님한테 제(祭)를 올리는 거라서 용왕제라고도 하는데 해마다 5월이면 빠뜨리지 않고 해오고 있다. 많이 잡히면 많이 잡혀서, 어장이 신통찮으면 발복축원을 비는 심정으로, 어중간하면 또 그런 대로 착실하게 도장을 찍어왔다.
 
 잘되면 내 탓, 못 되면 귀신 탓이 이곳에서도 유용하기 때문이다. 생선이 많이 잡히면 내가 기술이 좋아서, 안 잡히면 용왕이 심술을 부렸거나 아니면 직무유기의 게으름에 빠졌기 때문에 그렇다고, 우선 나부터 떠들고 다닌다.

올해도 어김없이 풍어제가 열렸다. 지난 몇 년간 어장이 시원찮았으므로 삼가 심각한 기분으로 치러졌다. 어떤 기분으로 하든 이거 한번 볼 만하다. 우선 마을의 웬만한 배는 모두 화려한 만선기로 단장을 한다. 만국기를 다는 배도 있다. 제사를 지낼 배가 제관 일행을 싣고 출발하면 매귀굿을 할 매구꾼(요즘 말로 풍물패)이 탄 배가 그 다음, 그리고 치장을 한 마을 배들이 우당탕탕 뒤를 따라간다. 숫제 전투라도 치르러 나가는 기세이다.

 
바다 한가운데서 제를 올린 다음 제물과 돈을 실은 자그마한 떼배를 띄워놓는 게 하이라이트이다. 모든 배들이 떼배를 중심으로 시합하듯 빙글빙글 돈다. 도는 횟수만큼 만선(滿船)이 보장되는 것 같다. 그러는 동안 매구꾼들은 왁자하니 풍물을 친다. 거문도 뱃노래도 부른다. 이 정도로 한바탕 바다를 뒤흔들어 놓으면 용왕도 부담스러워 뭘 안 하지는 못할 것이다. 왜? 이미 받을 준비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차마 모른 척할 수 없는 법 아닌가.


용왕제가 끝나고 며칠이 흘렀다. 한끼 잘 차려 먹인 게 효과가 있는가를 보러 어제는 친구들과 볼락낚시를 갔다. 배를 타고 방파제, 갯바위 이곳저곳을 싸돌아다녔는데도 전혀 재미를 보지 못했다. 아무래도 용왕이 단단히 틀어졌거나 이제는 눈치가 트여 젯밥 정도로는 양이 안 차는 모양이라고 밤 깊어 돌아오면서 우리는 수군거렸다.


그러면 우리가 할 일은? 안 물어도 계속 낚시채비를 던지는 것처럼 또 풍어제를 올리는 것이다. 돌아오는 5월에 또 한다. 될 때까지 한다. 그거 외에는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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