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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고 그리운 고향집, 어머니 밥상

 

(소설가 이경자 샘이. 양희은의 시골밥상 책에 대해 쓴 글임.

아산의 향기에 실렸다며 원고를 보내주셨다.

나는 양희은 언니에게 또 패스^^)

 

 

몇 년 전에 한의사 후배와 강화도로 갔다. 가는 길에 냉면을 먹는 게 중요한 일정의 하나였다. 그런 건 아무데서나 안 먹는다고 말했다. 육수에 조미료 맛만 내는 건 싫다고. 대장균 득시글거리고. 내가 사뭇 까다롭게 굴었다. 희은이 언니가 맛있댔어. 후배가 자신 있게 말했다. 가수 양희은을 언니라고 부르는 후배는 경기여고 출신이다.

 

양희은이 육수를 맛보고 곱빼기! 소리쳤다는 냉면은 정말 맛있었다. 이후에도 여러 번, 양희은이 보장하면 틀림없다는 밥집을 다녀보았다. 그런 음식점엔 두 가지가 달랐다. 첫째, 음식에서 돈 냄새가 안 났고 그래서 맛에 정성이 느껴졌다. 두 번째는 맛과 정성에도 불구하고 값이 저렴했다. 나는 이런 원칙에 철저한 양희은 표 음식을 먹는 게 자랑스러웠다.

 

그런 양희은이 <시골밥상>이란 책을 냈다. 정갈한 장독대 사이에 서있는 가수 양희은. 책의 표지다. 연예인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나 편견을 다 사라지게 하는 너무도 착한 딸의 인상이다. 표지에서 시선을 거두고 페이지를 넘기면 연기가 피어오르는 초가집. 거기에 한동안 마음이 머물러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충청도에서 전라도, 강원도, 제주와 경기도를 돌아다닌 시골밥상의 목차가 나온다. 밥을 해서 돈을 받고 파는 음식이 아니라 그저 어머니와 어머니를 이어서 딸에서 딸로 전해 내려온 시골밥상의 내력들이다.

 

남편이 몸살을 앓을 때 시어머니가 잘 해준 탕이나 국을 끓여주면 몸살이 풀린다는 말이 있으니 여기 소개된 밥상의 차림들은 모두 시어머니, 친정어머니의 솜씨내림들이다.

 

충청도 서산 운산면 여미리의 종갓집에서 차려낸 밥상엔 서리태콩 밑에 깔고 지은 밥에 반찬은 딱 세 가지. 뚝배기에 담긴 호박게국지와 머위 쌈과 된장. 사람 몸에 이로운 머위의 장점들이 적혀있다. 어릴 때, 집 뒤란에 지천이던 머위를 어찌나 싫어했던지. 요즘 몸에 좋다는 건 다 내가 싫어하던 것들이다.

 

강원도 편에는 내 고향 양양의 시골밥상도 있어서 반갑고 우쭐했다. 정말 먹기 싫어했던 곰버섯. 생긴 것이 곰발바닥 같다고 이름이 그렇다. 초고추장에 새콤달콤하게 무쳐먹는다. 싫어했던 그 맛이 새삼 그리웠다.

 

양희은의 시골밥상은 요리전문가의 음식이 아니고 소문난 음식점의 주방장 솜씨가 아닌 것이 좋다. 책 한 권을 훌훌 들춰가며 읽다보면 우리나라의 이곳저곳 구석진 곳을 두루 여행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그리운 것들. 우리들 유전자의 기억에서 도무지 지워지지 않는 맛의 추억들. 아주 소중한 그리움들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아마 누구에게나 그럴 것이다.

 

나는 봄철만 되면 쑥 개떡을 잘 사먹는데 이 책을 보고 나서 스스로 쑥개떡을 해보았다. 마침 쑥을 뜯어 냉동한 것이 있었다. 떡을 해먹겠다, 맘만 먹고 실행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걸 꺼내 맵쌀 불려 방앗간에서 빻았다. 적당힌 나눠서 냉동했다가 꺼내 반죽해서 개떡을 했다. 쫀득이는 것이 사먹는 것과 달랐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더 늘어나니 스스로 대견했다.

 

먹는 것을 이리저리 따지면 좀스럽기도 하고 까다롭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먹는 것이 곧 생명이다. 우리의 피와 살과 뼈는 모두 먹는 것으로부터 생기기 때문이다. 공해와 유해화학물질의 공포가 은연중에 우리들의 밥상을 의심스럽게 하는 이즈음, 몸이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음식을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양희은의 시골밥상이 우리들의 그리움에 위안과 희망을 주는 이유다. 두툼하고 묵직한 책을 펼쳐놓고 이거 한 번 해먹어볼까? 우리 고향과 만드는 방식이 다르네, 하면서 시작되는 기쁨. 사람 사이의 사랑은 이런 것이 아닐까. 마치 어린 날 세상을 알게 해준 백과사전처럼 시골밥상은 아무 때나 펼쳐서 거기 소개 된 방법으로 음식을 만들 수 있게 한다. 우리 강산, 우리 사람들의 밥상 백과사전이다.

 

올해로 가수 생활 40년이 되었다는 양희은. 가수나이로만 불혹이 되었다. 목을 아껴야하므로 목에 이로운 음식을 챙긴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의 청정한 목소리 속에, 그리고 점점 더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그의 모습에, 어쩌면 그가 챙기는 순정한 음식들의 생기와 따뜻함이 담긴 건 아닐지, 상상한다. 밥상은 곧 사랑이니까.

 

이경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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