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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극장에서 만나요. (김근 시)2011.07.15 15:22
이제 우리 구름극장에서 만나요 구름떼처럼은 아니지만 제 얼굴을 지우고 싶은 사람들 하나둘 숨어드는 곳 햇빛 따위는 잊어버려도 좋아요 날카롭게 돋아나서 눈을 찔러버리는 것들은 잊고 구름으로 된 의자에 앉아 남모르게 우리는 제 몫의 구름을 조금씩 교환하기만 하면 되지요
「구름목장의 결투」나 「황야의 구름」 같은 오래된 영화의 총소리를 굳이 들을 필요는 없어요 구름극장에는 처음부터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네모난 영사막은 뭉게뭉게 피어올라 금세 다른 모양으로 몸을 바꾸지요 그럴 때 사람들이 조금씩 흘려놓은 구름 냄새에 취해 잠시 생각에 잠겨보는 건 어때요 오직 이곳에서만 그대와 나인 우리 아직 어둠속으로 흩어져버리기 전인 우리 서로 나눠가진 구름의 입자들만 땀구멍이나 주름 사이에 스멀거리기만 할 우리 아무것도 아닐 그대 혹은 나
지금은 너무 많은 우리 사람들이 쏟아놓은 구름 위를 통통통 튀어다녀보아요 가볍게 천사는 되지 못해도 얼굴이 뭉개진 천사처럼 하얗고 가볍게 이따금 의자를 딸깍거리며 구름처럼 증발해버리는 사람이 있어도 그런 건 그리 대수로운 일은 아니지요 구름극장이 아니어도 우리도 모두 그처럼 가볍게 증발해버릴 운명들이니까요 햇빛 따위는 잊어버려도 좋아요 구름에 관한 동시상영 영화들은 그리 길지 않아요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 구름극장에서 만나요 저녁이면 둥실 떠올라 세상에는 아주 없는 것 같은 구름극장 말이에요
시_ 김근 -1973년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났으며, 1998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이월」 외 4편의 시가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뱀소년의 외출』, 『구름극장에서 만나요』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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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리는 시한편이 마침 배달되었네.
구름극장에서 구름조작들을 솜사탕처럼
뜯어먹다가 얼굴이 뭉개지듯 흐려지다
어느새..증발할 우리들.
가볍게 짐을 가볍게
인생을 가볍게....휴우 킬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