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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주고 저주를 산 미스김 (작은책 김현진)2010.10.12 14:35 돈 주고 저주를 산 미스 김(<작은책> 2010년 8월호) 김현진/ 에세이스트
미스 김은 다방을 잠시 쉬기로 했다. 하루 감정 노동만 열다섯 시간. 써야 할 글들이 들어오면서 녹즙 배달만 다섯 달, 다방 아르바이트 두 달이 넘은 미스 김은 감정 노동을 열다섯 시간씩 하면서 이 글들은 쓸 수 없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마침 방학 때 등록금을 벌어야 하는 후배한테 아르바이트 자리를 잠시 물려주기로 했다.
녹즙 배달도 피곤한 일들이 점점 많아진다. 이를테면 회사에서 녹즙을 받아 먹던 사람이면 퇴사를 할 때 녹즙도 안 먹겠다고 알려 주고 미납 요금도 청산하고 가면 좋은데 그냥 내뺀다. 하다못해 퇴사한다고 알려주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미스 김이 녹즙 손님이 퇴사했다는 걸 알아차릴 때까지 계속 녹즙은 나오고, 결국 아무도 먹지 못한 채 아까운 녹즙만 버려지고, 그 녹즙 값은 미스 김이 덮어써야 하는 것이다. 억울한 것도 억울한 거지만 미스 김은 아무도 먹지 못한 녹즙이 너무 아깝다.
퇴사 안 해도 이제 그만 먹겠다고 하는 손님도 당연히 있는데, 그 가운데는 녹즙 값 달라고 난리 칠 때까지 모른 척 입 닦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다. 애들 분유값도 한창 들 때라 돈 생기면 주겠거니, 하고 모른 척해 준 손님 누구가 있었다. 그이한테는 달라고 난리 치지 않는 미스 김의 배려 따위 그냥 멍청한 거였다. 이런 것 다 받으러 올 때까지 모른 척하면 안 주고 입 닦을 수 있다고, 그쪽에서 가만히 있는데 굳이 낼 필요 없다, 달라고 달라고 난리 치면 그때 주면 된다, 하고 뭔가 대단한 노하우를 전수하듯 부하 직원한테 자랑했다고 한다.
노동자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구조가 바로 이런 건가 싶어서 미스 김은 어깨에 힘이 쭉 빠진다. 게다가 미스 김은 그 사람도 하청업체를 전전하다가 본인의 노력으로 안정적인 회사에 입사하게 된 사람인 걸 모르지 않는다. 못난 놈들끼리는 얼굴만 봐도 흥겹다는데 요즘 못난 놈들끼리는 얼굴만 봐도 뜯어먹을 궁리만 하는 모양이다.
미스 김도 어쩔 수 없이 달라고 달라고 난리 난리를 쳐야 할 것 같다. 녹즙 값 떼먹고 튄 사람들 이름을 다 대자보에다 써서 엘리베이터에 붙이라고 누가 그런다. 그럴 수야 없고 미스 김의 손님들은 대부분 좋은 사람들이지만 방금 그런 사람들은 정말로 확 써 붙여 버리고 싶었다. 청소 아줌마들은 며칠 나오고 그만둘 줄 알았더니 오래도 한다고 독하다 독해, 한다. 하지만 힘들지 않은 노동이 어디 있을까. 회사 생활 할 때도 이 정도의 스트레스는 늘 있었다. 하지만 스트레스의 종류가 다르다. 말하자면, 미스 김은 ‘여성 비숙련 감정 노동자’다.
미스 김이 다방을 잠시 쉰다고 하자 다방 단골 손님들인 할아버지들은 “걔 참 이쁘지?” 했다고 한다. “얼굴이 이쁘다 뭐 그런 얘기가 아니라 애쓰며 사는 것들은 다 이뻐” 하셨다는데, 이런 날 미스 김은 그 말이 별로 반갑지 않다. 애쓰며 살아도 보람 없는 빈곤 노동, 개미지옥처럼 끝날 날 없는 빈곤 노동, 그 가운데서도 감정 노동, 돌봄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여성 비숙련 노동자들은 그다지 예뻐 보이지 않아도 좋으니 애 좀 덜 썼으면 할 것이다. 이 점은 미스 김이 앞으로도 내내 해야 할 고민이 될 것 같다.
어쨌거나 지금은 다른 고민이 있다. 미스 김은 친구가 별로 없다. 물론 성격이 나빠서 그렇다. 그 와중에 가장 친한 친구가 결혼을 하니 이것저것 신경 써 주고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신랑이 착하긴 하지만 열 살이나 많고, 또박또박 월급 받아 오는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니고, 남자 집에서 방이라도 얻어 주는 게 아니니 마음이 더 쓰여서 미스 김은 객기를 부려 신부 예복을 석 달 할부로 질러 줬다.
함께 맥주를 30만 리터쯤 마시며 청춘을 보낸 친구가 아기 엄마가 된다니 마음이 자꾸 쓰인다. 워낙 옷 사는 것도 싫어하는 친구라 웨딩드레스 고르는 것도 귀찮아해서 식을 몇 주 남겨 두고서야 골랐다. 그것도 시들해하는 바람에 미스 김이 같이 가서 온갖 참견을 했다. 무슨 탈지면으로 만든 것 같은 드레스에 리본으로 도배를 해 놓은 정신없는 드레스를 보며 인상 쓰는 것도 미스 김의 몫이었다.
신부가 옷 갈아입는 동안 웨딩숍과 연계된 업체 계약서를 넘겨 보며 미스 김은 기절초풍을 했다. 무슨 발걸음 하나 옮기는 것마다 갈피갈피 죄다 돈이다. 웨딩 촬영이니 비디오 촬영이니 이런 걸 다 빼먹고 안 하니 웨딩숍에서도 별로 안 좋아하는 눈치다. 친구가 미스 김한테 부케를 받으라고 해서 그러겠다 했는데, 웨딩샵에서 부케 받으시는 친구분이시냐고, 그러면 꽃 값으로 이십만 원 내고 가시란다. 부케 받고 석달 안에 시집 못 가면 큰일 난다는데, 심지어 그 저주를 돈 주고 사기까지 하게 생겼다.
알음알음 알아보니 보통 부케니 혼주 꽃이니 하는 건 웨딩숍에서 서비스로 주는 건데 우리가 워낙 웨딩샵 남는 장사 안 시켜 주니까 얘들이 안면 몰수하고 그냥 꽃 값 내놓으라고 한 거고, 신부도 결혼 처음 해 보는 거니 뭘 몰라서 그런가 보다 한 모양이다. 미스 김은 밀어주는 김에 그냥 확 밀어주기로 하지만 이 웨딩숍에서는 빈정 상해 버려서 딴 데 알아보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축가 불러 주기로 한 사람도 2주 전에 사정이 있다며 취소해 버렸다. 다정도 병이라면 그게 아예 지병 수준인 미스 김은 또 여기저기 전화를 돌린다.
그렇게 이리저리 뛰면서 보니 결혼이라는 게 참 피곤한 거였다. 이 친구는 신랑 자취 집에 몸만 들어가는 거니 텔레비전이나 하나 사고 혼수도 안 하지만 예물이라고 받은 것도 없다. 없는 형편에 예단이니 예물이니 안 하기로 자기네끼리 이야기는 했지만, 어른들 맘은 또 그게 아니었다 보다. 상견례 때 예단 이야기를 하니까 안 받겠다는 말이 없더란다. 안 받고 주는 꼴이 되니 미스 김만 옆에서 약이 올라 친구에게 말을 꺼내 봤지만, “어른들 생각이 그게 아니니까……” 하는 말 앞에서는 대거리할 말이 없다.
‘말을 말자. 내 결혼도 아닌데’ 하고 이를 갈면서, 미스 김은 내가 결혼할 때는 화장도 내가 하고 머리도 내가 하고 원피스나 하나 사 입고 꽃은 시장에서 몇 개 사 오련다고 마음먹었다. 부조라고 내 줄 사람도 없지만 누가 하면 투쟁 기금으로 어려운 사업장에 밀어주겠다. 말은 다 그렇게 하고 그때 되면 “어른들 생각은 그게 아니니까……” 할까 봐서 분기탱천한 마음에 신랑도 없는 주제에 그 결심을 여기 적어 두니, 부디 <작은책> 독자 여러분이 증인이 돼 주시라. ~~~~ 김현진님 결혼때는 증인 하나 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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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 올리고 나서의 삶이 중요하지 예식이 중요한감~~~? (쌤 말투로ㅎㅎ)
아무래도 자기 식대로 결혼하려면 모든 비용을
나와 남편될 사람 돈으로 해결해야할 것 같아요 >,.<
저도 결심~~~~!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