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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공주 하편

2009.12.03 15:17

약초궁주 조회 수:1750 추천:241

 

누구의 연인도 되지마라 (김현진 중에서)

 

~~~~~~

 

지금은 담담하게 회상할 수 있지만 아주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된 이까지 폭력적 체벌을 경험했기 때문에 육체적 고통에는 상당히 둔감한 편이고, 이것은 필연적으로 마음의 통각 역시 둔중하게 만들었다.

 

 원래 울거나 빽빽거리면 더 맞는 법이다. ‘아 괜찬아, 아무것도 아니야’하고 생각해야 그 시절을 견딜 수 있었다. 전형적인 경상도 인간의 특성은 자신도 모르게 타인에게 무안을 준다는 것인데, 그 무안의 대상에서는 가족 역시 면제되지 못한다. 그런 것들은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맞는 것도 얼마든지 괜찮았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속에 컴컴하고 어둡고 음침한 골방 하나가 생겨나버린 게 문제였다. 때려도 좋으니까. 얼마든지 밀쳐내도 좋으니까, 울고 있으면 딱 한 번만 달래주면 얼마나 좋을까.우리 누구누구, 울지 말라고.

 

 

그 꿈이 단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나는 어른이 되었다. 딱 한 번이라도 그랬으면 해서 당시 내 방이던 골방에서 농성에 돌입한 적이 있었지만, 농성은 전혀 효과 없이 반나절 만에 강제 진압되었다. 아니, 강제가 아니라 그냥 스스로 투항한 거였다.

 

 뭐 또 시시껄렁한 이유로 부모에게 혼나고 뭐라고 모진 소리를 들은 다음 방구석에 처박현 나는 소리 높여 울었다. 목이 쉬면 조그만 소리로 울었다. 그러다가 서러어지면 다시 더 크게 울었다. 그렇게 울면서 아마 계속 속으로 말하고 있었던 거였다.

 

‘엄마, 제발 나 좀 다래줘. 나 좀 토닥여줘, 나 좀 안아줘, 제발 제발 제발 부탁이니 나보고 울지 말라고 말해줘.....’

 

엄마의 발걸음이 문 앞에서 멈췄고나는 눈물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180도 다른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 가슴에 칼이 박히는 것 같았다.

 

“하이고, 놀고 자바졌네. 저카면 누가 신경 쓸까 봐? 거서 실-컷 있어라! 지 부모가 죽었나 뭐 저래 울고 자빠졌노!”

 

여섯 시간 정도 그렇게 울면서 나름대로 농성을 해봤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으므로 나는 결국 포기하고 제 발로 철수했다.

 

 이후 부모와의 관계는 국면이 완전히 달라졌다. 엄마가 꾸짖으면 전에는 울면서 빌었지만 이제는 더 심한 말로 되받았다. 덩치가 커질수록 엄마가 때리는 것 정도는 아프지도 않았다. 아버지가 이단 옆차기 정도는 해야 좀 타격이 왔다.

 

부모와 다투면서, 제 아무리 얻어맞건 아무리 심한 말을 듣건 결코 울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들은 필연적으로더 큰 폭력을 불러왔지만, 마음속에 골방이 있는 나로서는 무서울 것이 없었다. 안에 들어가서 문을 닫으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아무도 두드리지도, 관심 갖지도 않는 그 방 안에 있으면 나는 누구에게도, 나 자신에게 조차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어른이 되엇지만 그 방이 사라지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내가 한 치의 미련도 없이 차버리고 난 다음 이름조차 잊어버린 남자들은 하나같이 공통적인 점이 있었다.

 

그들은 내가 울고 있을 때 울거나 말거나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남자들이었다. 물론 서점에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연애 지침서들은 남자는 여자의 눈물에 난감해하고,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자신이 당장 해결해 줄 수 없는 일로 여자가 울면 감정적 패닉에 빠진다면서 남녀의 차이를 자상하게 설명해주려 하지만 당장 울고 있는 나는 그딴 것 다 집어치워라, 하고 은신해 있던 ‘성인아이’의 폭정하에 들어가버리는 것이었다.

 

 한 번 울어버리면 마치 시간 이동을 하듯 그 ‘성인아이’는 나를 그 시절의 골방으로 다시 밀어 넣었다. 문밖에서 엄마의 발걸음 소리에 필사적으로 귀를 기울이며 숨죽여 울던 그 좁고 캄캄한 방, 더할 수 없이 외롭고 어둡고 쓸쓸했던, 할 수만 있다면 지상에서 신속하게 사라져버리고 싶었던 슬픈 골방. 그 골방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오면 부모와의 관계가 그랬듯이 결코 남자와의 관계도 돌이킬 수 없었다.

 

“내가 잘못했어,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하는 말을 들어도 말하기는 구차스러웠다. 그러면서 이 골방의 문을, 결코 열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육친조차 열어주지 못한 문을 도대체 누가 열어준단 말인가.

 

나는 점점 냉소적이 되었고, 누구와 헤어져도 상처 입지 않았다. 제 부모조차 달래주지 않은 년을 누가 달래준담. 나를 골봉으로 들어가게 한 남자가 어떤 말을 해도 한번 차가워진 마음의 온도는 결코 다시 올라가지 않았다.

 

내가 그것 때문에 부모하고도 척졌는데 생판 남인 네가 알 게 뭐냐. 나는 무심하게 골방의 문을 쾅 닫았고 남자가 도대체 “나를 왜 차는 거야?”하고 물으면 이것저것 설명하기 귀찮았으므로 “그냥 니가 병신이라서”하고 대답했다.

 

 

‘성인아이’는 그 안에서 내내 울었다. 하지만 나는 내 눈물에도, ‘성인아이’의 울음소리에도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철들면서부터 내내 싸워야 했던 생활고가 나를 그 아이나 스스로에게 관심 갖는 것을 더욱더 차단했다.

 

 울고불고해서는 기운이 없어서 당장 해야 할 일을 못하고 당장 일을 못하면 돈이 없고 돈이 없으면 학비도 못 내고 쌀 살 돈도 없으니 ‘성인아이’는 나에게서조차 방치되어 그렇게 내내 제 골방에 앉아 있었다.

~~~~~~~~~~~~~~

이런 날,누가 사랑하겠어?

자조와 독백을 날리는 그대들에게

수십억 광년 떨어진 빛의 입자가

찬란하게 비춰준다는 사실 잊지말라고

빛이 사랑이라고 전해주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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