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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이여~~안녕! (강위의 지글지글)

2009.04.23 16:11

약초궁주 조회 수:2124 추천:231

이 게시판에도 출몰하는

강위님 (요리사진 올렸던 처자) 글입니다. 온라인 이프 펌~~~~~

 

'순정이여~~안녕 '

 

분홍색 파티션이 쳐진 방

 

 

애초부터 내 인생에 ‘순정’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았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말을 종종 듣는데, 그 추측들은 아는 사람, 연예인 몇몇의 얼굴을 거쳐 이런 종착역에 다다른다. “무슨 만화 캐릭터를 닮았는데, 그게 뭐였더라?”

 

비록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들이 선명한 이미지로 떠올리는 만화 캐릭터들은 순정만화 주인공이 아니다. 놀라울 것도, 슬플 것도, 당황스러울 것도 없다. 내게도 눈이 있고, 내 방에는 거울이 걸려 있지 않은가. 명랑만화 캐릭터(주연이 아닌 조연인 경우도 많다)를 연상시키는 외모를 가졌다고 해서 순정적 사랑을 꿈꾸지 말란 법은 어디에도 없으나, 나는 한번도 ‘그것’을 ‘내 것’으로 품어본 적이 없었다. 그랬었다.

 

 

“너 없으면 안 돼”

 

내게는 연애를 시작할 무렵 겪는 몇 가지 징크스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우리가 헤어진다면 친구로 만날 수 있을까?” 따위의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상대의 대답을 들으나마나 한 질문들 이면에는 시작할 때 끝을 생각하는 오래된 습성과 영원한 것은 없다는 가치관이 깔려 있었다. 상대를 죽도록 사랑한다거나, 그를 위해 나를 바꾼다거나, 한 사람만을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솔직히 그러고 싶지 않았다. 연애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었다. 가족과 친구와의 관계 모두,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는 선에서 존재하길 바랐다.

 

이랬던 나는 위대한 선각자나 인생의 스승, 유명인이 아닌 내 곁의 한 사람으로 인해 변해갔다. 나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말과 행동, 나의 가치관에 위배되는 크고 작은 선택들이 내 삶에 스며들었다. 강요는 없었다. 온통 나에게 집중하고, 온 힘을 다해 내 손을 잡는 그 사람을 보면서 내 스스로가 얄팍하고 이기적이란 자발적 반성을 한 것이다. 반성 이후부터는 가속도가 붙었다. 사고는 정지됐고, 일상부터 미래까지 ‘함께’라는 단어가 필수적으로 따라 붙었다. 두려움과 아픔, 설렘을 수반한 과정을 통해 낯선 단어들이 내 것이 되었다. 영원 같은 것들. 나는 그와 나를 ‘영원한 공동의 운명체’로 묶었다.

 

 

밀어내기와 빠져들기, 그 사이

 

모든 순정의 끝이 신파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 경우는 그랬다. 신파 또한 인생을 통틀어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단어였다. 이별은 깔끔하지도, 담담하지도 못했다. 날선 칼로 잘라내 듯 말끔한 분리를 꿈꿨던 것은 아니었지만, 피와 살점이 튀어 만신창이가 되는 것 또한 그려보지 못한 것이었다. 이별을 노래한 세상 모든 유행가가 마치 내 일기장을 털어낸 것처럼 다가오는 경험도 썩 유쾌하지 않았다.

 

내가 나를 잃고, 네가 너를 잃는 경험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적당히 하자, 적당히. 피부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그 정도만 하자. 뼛속까지 닿는 관계, 심장을 내어주는 관계는 각자의 인생을 좀먹을 뿐이니, 적당히 소중하고 하찮은 것으로 여기자. 지금은 너로 인해 설레지만, 너의 절망을 내 것처럼 느끼지만 헤어져 돌아와 방문을 닫으면, 너는 너, 나는 나, 돌아서면 남이 아니냐. 세상살이는 쉬워졌고, 또 그만큼 가벼워졌다.

 

무언가 어긋나고 삐걱거렸다. 즐겁기보다 불안했고, 편하기보다 공허했다. 명백한 포기였다. 홀로 독방에 앉아 인생을 꾸려갈 수 있다는 믿음은 뿔난 아이의 공허한 비명에 불과했다. 숨결을 주고받는 살뜰함, 마음이 담긴 보살핌, 관계의 지속성에 대한 나의 욕구는 의도적인 계산, 합리적 계획, 이기심 같은 것으로 채워질 수 없었다. 결국 ‘적당히’라는 처방은 나의 둔중한 욕구를 감당하기엔 얄팍한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음을 인정해야 했다.

 

 

분홍색 파티션을 떠올리다

 

관계 맺기는 ‘한 방에 두 사람이 사는 것’을 연상시킨다. 나라는 방에 네가 들어오는 것. 그 불편한 설렘을 어떻게 지속시킬 것인가.

 

한 방에 있으면서도 각자의 영역을 확보하는 것, 나는 파티션을 떠올렸다. 서로가 원한다면 파티션을 걷어내고 하나가 될 수 있고, 방향과 규모를 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각자의 방’을 가지는 것과는 달랐다. 상대에 대한 관심과 존중을 바탕으로 파티션을 놓는다면 함께 또 같이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이왕이면 담담하고 따뜻한 분홍색 파티션. 때론 파티션에 귀를 대고 상대방의 숨결을 느껴보기도 하고(스토킹이 아니다), 똑똑 노크를 할 수도 있겠지.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파티션 너머의 상대를 의식한다는 것은 지속적인 관심과 긴장 상태를 요구할 테니까. 하지만 내가 너의 전부라는 착각도, 내가 너에게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망상에 빠지지 않으면서, 각자의 생을 꾸려가기 위해서는 그만한 수고로움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때론 파티션에 눈물과 한숨이 얼룩지기도 하고, 작은 균열들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자아분열이라는 병에 시달리며 밤거리를 미친 듯이 뛰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것들이 하나의 무늬가 되어, 내가 맺는 관계의 나이테가 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파티션을 세우고 싶다.

 

 

언제든 안녕, 그리고

 

“너에게 주고 싶은 선물이 있어.”
“뭔데?”
“언제든 안녕.”

 

상대방은 멋진 척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럴 의도는 없었다. 무책임을 정당화할 생각도 없었다. 다만 오해의 여지에 대해선, 인정한다.

그것은 영원이나 절대라는 말에 우리를 묶지 않고 지금 이 순간,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자는, 그래서 돌아보면 후회 없을 만큼 잘 지내보자는 대단히 ‘파이팅’적인 의미였다. 그 말 뒤에는 ‘언제고 또 만나’라는 말이 설탕물로 쓴 글씨처럼, 연한 분홍 빛깔 글씨처럼 숨겨져 있었다. 뜨거운 열기를 받으면 진갈색으로 드러나는 마음처럼, 혹시나 뭔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드래그를 했을 때 드러나는 비밀 메시지처럼.

 

 

너에게 ‘명랑’을 바친다

 

너 하나만 있으면 된다는, 너로 인해 내가 산다는 식의 순정은 그만.
나에게는 나를 지킬 필요와 권리가 있고, 너로 인해 행복하고 내 인생이 달라질 수는 있지만 너로 인해 살아갈 수는 없음을 인정했으면 한다. 너를 내 인생의 소중한 ‘part'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진정한 ’partner'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라는 방에 다양한 색깔과 크기의 파티션을 놓는다면 한 사람에게 집중하느라 다른 관계를 상실할 필요도 없을 테고, 모든 파티션을 걷어내고 모두를 한 자리에 모아 ‘party'를 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너와 내가 다르다는 것, 지금 우리가 공유하는 것들이 줄어들거나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당장의 균열이나 서운함에 함몰되지 않고, 조금 더 긴 호흡으로 상대를 바라본다면, 가치 있고 소중한 관계들을 더 많이 새길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여전히 나는 나를 가장 중심에 둔 채 살아가지만, 타인의 존재를 건강하게 긍정하며 공존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긴 생머리에 가냘픈 몸매, 우수에 젖은 눈빛, 무조건적인 희생과 극기는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다. 동글동글한 얼굴과 눈, 깔깔깔 웃거나 심통 맞은 표정을 지으며 넘어질 듯 달려가는 명랑만화의 주인공, 나는 지금 당신이 떠올릴 수 있는 바로 그 포즈로 당신에게 달려가고 있다. 설탕물을 찍어 바른 편지를 손에 들고서, 지금 달려간다.

 

 

~~오오..강위야.

너에게 줄 선물...언제든 안녕 (심장 쿵)

너에게 명랑을 바친다. (순정대신 ..감동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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