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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책중에 짧은 에피소드를 옮겨봤다)

 

우편물을 받아와서 보니 자동차 압류 통지서가 있다. 속도위반 과태료를 제때 내지 않아서다. 나는 통지서를 찬장 서랍에 넣는다. 거기에는 먼저 온 자동차 압류 통지서가 수북이 쌓여있다. 속도위반이나 신호위반도 있지만 대체로 주차위반 때문이다.

 

우편물을 분류하다 보니 이번에는 자동차 공매처분 예고장이 튀어나온다. 이건 또 뭐야? 건강보험료를 석달 치 밀렸는데 이달 말에 내 차를 공매한다는 경고다. 안돼! 이 드넓은 서울바닥에서 내 발에 달린 바퀴를 떼어간다는 건 말도 안돼! 이 드넓은 서울바닥에서 내 발에 달린 바퀴를 떼어간다는 건 말도 안돼! 이 드넓은 서울바닥에서 내 발에 달린 바퀴를 떼어간다는 건 말도 안돼!

차라리 내게서 결혼반지를 압류해 가라구! (진짜 이 친구의 말투다)

 

 예술애호가협회 회장 선거가 곧 돌아온다. 예술계에 대해 문외한인 사간강사 친구는 너도 예협 회원이니까 회장선거에 나가보라고 했다. 듣자하니, 예협 회장에 당선되면 좋은 일이 여러 가지다. 우선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집필실이 제공되며, 언제나 공짜로 술을 마실 수 있는 술집 회원권이 한 학군에 한 개씩 제공되며, 저녁 시간에 공무로 늦어질 경우엔 베이비시터가 파견돼서 아이들을 먹이고 재워주며, 무엇보다도 제세공과금을 대신 은행에 납부해 준다.

(씨네 21 창간일부터 편집장까지 올라가기 까지 엄청 일을 했으니 제세 공과금 납부며 육아는 뒷전

늘 업무에 씩씩한척하지만 가사스트레스 또한 대단했다는걸 안다.)

 

 

나는 홧김에 후보등록을 한다. 등록한 후보가 뜻밖에 두 명뿐이어서 제법 게임이 된다. '인생은 저지르는 자의 것'이라는 친구의 충고가 옳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 '조 후보, 회비 연체 3년'이라는 제목으로 대문짝만한 기사가 실렸다. 사실이다. 찬장 서랍에는 자동차 압류 통지서말고도 예협에서 온 회비납부 지로용지도 잔뜩있다. 입회비를 낸 이래로 한 번도 회비를 낸 적 없다.

 

  저녁에 TV뉴스를 보는데 갑자기 내 친구가 화면에 나온다. 하지만 반가운 것도 잠시, 내가 휘트니 휴스턴이R&B가수가 아니라 재즈가수라고 입에 거품을 물고 강변한 적이 있다고 폭로한다. 사실이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그 무식함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예술평론가로서 이건 정말 치명적이다. 이미5년도 지나, 윤리적 공소시효가 지난 사안이건만. 야, 우리는 친구 아이가. 어찌 너마저도.

 

  다음날 아침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현관의 조간신문을 집어온다. '조 후보, 베스트셀러 작가 모씨를 음해' 내가 최근 어느 술자리에서 한 얘기가 실려있다. 내가 오만 방자하게도 어떤 베스트셀러 소설에 대해 "나는 그거 다섯 페이지 읽고 쓰레기통에 던져버렸어요."라고 말했다 한다. 사실이다. 내가 어떤 소설을 도저히 읽기 괴로워서 다섯 페이지 읽다 만 적 있다. 그런데 그 책이 100만 부 넘게 팔렸다는 얘길 듣고 나로서는 꿈도 못 꿀 100만 부라는 숫자에 경기를 일으켜 순간적으로 말이 심하게 나와 버린 것이었다.

 

(팔리는 작가 너댓명이  책시장 100만부를 사등분해서 나눠 가지고

싹쓸이 하면 판은 끝난다고. 우석훈씨가 88만원 세대에 썼다는데.

마이너리티- 너는 무능해 하고 말하면 끝날일이 아닌거다.

대중들이 다양하게 골고루 '설득'당했으면 좋겠다)

 

 게다가 술기운이 아니었다면'쓰레기통'운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당대의 베스트 셀러 작가들에 대해서는 늘 존경심을 품고 있다 작품에 비해 비평적으로 뭐라고 왈가왈부하든 그들은 동시대 대중을 설득해내는 데 성공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게 내 진심이라고 설명한들 기자들이 믿어 줄까. 그런데 이 이야기는 내 단골 술집의 주인이 증언한 걸로 나와 있다. 으악! 나는 완전히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저건 노다지다, 노다지야! 내가 저 술집에서 폭탄 맞고 필름이 끊긴게 무릇 기하하여, 운수 사납게도 엉뚱한 사람하고 시비 붙은 건 또 무릇 기하인가. 아니나다를까, 상대 후보 진영에선 앞으로 하루에 한 건씩 폭로하겠다고 자신감을 보인다. 그럴 테지. 하루에 한 건씩 폭로해서 3년은 갈 거다.

 

(저자는 저혈압임에도 불구하고 술자리를 끈질기게 버티는걸로 출세했다고들 한다.ㅋㅋ

가정 있는 다른 여직장인들처럼 퇴근시간에 조바심을 내지않고 '쿨'하게

저두요 숙직서게 해주세요. 라면서.

그런 정신으로 술을 마시다가 필름 자주 끊겼다는 슬픈 전설이 생겼다고 나는 추측한다)

 

  나는 매일 아침 오금을 저리면서 조간신문을 주워 온다. 약속한 대로 정확히 하루 한 건씩이다. "인세 떼어먹는 출판사 사장은 사형시켜야 돼." 이제 출판사에서 책 내기는 다 글렀다. "배우가 연기를 못하면 죽어야지." 미남 배우로 한창 뜬 ㄴ모씨가 전화해서 "소설가가 소설을 잘 못쓰면 죽어야지"라고 악담을 한다. "요즘은 쥐도 개도 대학교수 한다니까." 오빠가 전화해 "그럼, 나는 쥐냐 개냐"면서 화를 낸다.

 

(사회학 교수이신 조ㅇㅇ 오빠가 나한테도 그러셨다.

내 동생집 살림은 개판이라고..엇다대고 고자질하신 오빠가

모르시는건. 나도 마찬가지.큰 소리 친다는걸.

살림 잘하려는 습관과 태도 버렷!).

 

 

"조 후보,  ○○감독이 여배우 ○○씨를 따먹었다고 발언해 물의." 감독과 여배우쪽에서 모두 내게 명예훼손으로 소송하겠다고 선언했다. 아니, 소송도 소송이지만, 이 말이 어떻게 상대 후보진영에 흘러들어갈 수 있단 말인가. 하늘땅 별땅, 남편에게만 베갯머리송사로 한 이야기인데. 그러면 남편까지도 벌써?안돼!

 

  휴, 꿈이었구나.

자동차 공매처분 예고장 어디뒀지? 나는 찬장 서랍에서 압류 통지서들 사이에 섰여 있는 공매처분 예고장을 꺼낸다. 이달 치 아파트관리비하고 도시가스요금 청구서도 어디 있었는데. 벽의 달력을 본다. 오늘이 마감날이다. 나는 영수증들을 모아서 들고 은행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선다.

(엄숙한 관복을 입고 열씨미 공무집행중인 조작가.

이글을  읽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유비무환이라 조용한 진료실에서

나, <그녀에 관한 7가지 거짓말>을 깨가 쏟아지게

낄낄대며 읽는 중이다.  처음 읽었을때보다 더 재밌다.

 

영화학교재로 여성학교재로 사회학 교재로

이만한 책이  없다. 일독 강추!

 

한겨레 출판사 <그녀에 관한 7가지 거짓말> 조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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