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 여성살이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간부의 여성 조합원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다. 먼저 성폭력 피해 사실을 용기 있게 세상에 알린 피해자에게 이 땅에 사는 같은 여성으로서 뜨거운 지지와 연대를 보낸다.
사건도 사건이지만 양파를 까듯 시간차 공격으로 하나씩 드러나는 사실에 처음의 충격은 씁쓸함으로 변해 갔다. 성폭력 사건이 일어난 건 지난해 12월 초. 이 사건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올해 2월 초. ‘지금이 어떤 때인데 …’를 운운하며 조직 사수를 위해 가해자 쪽이 문단속을 하는 동안 피해자는 2차, 3차 피해를 겪고 있었다.
짐작하건대 ‘술이 취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가해자나 민주노총 간부들은 평소 화려한 언변으로 대한민국의 가부장제 현실에 누구보다 분노하는 착한 남자 역할을 충실히 했을 것이다. 과연 자신의 집에선 대한민국의 평균적인 성평등이 이뤄지고 있을까? 운동권 남성들이여, 내 글에 ‘아니오!’라고 외치고 있는가? 그렇담 내게 돌을 던져라!
나와 딸이 요즘 <교육방송>의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찍히고 있다. 그저 싱글맘 엄마와 10대 딸의 일상을 보여주는 수준의 다큐를 예상했는데 웬걸, 완전히 ‘검은 상처의 블루스’다. ‘우리의 조 피디’는 다 아문 내 인생의 상처를 인정사정 없이 헤집는다. “왜 내가 당신들에게 내 이혼을 이해시켜야 하냐?”고 화를 내다, 굳이 내 이혼 사유가 필요하다면 내 입으로 말하겠다고 카메라 앞에 앉았다.
“우리 사회가 이만큼이라도 민주화가 된 건 많은 분들의 희생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우리 사회가 진보적이고 기회가 균등한 사회로 나아가는 데 할 수 있는 제 몫을 다하고 싶지만 제가 겪어 본 운동권 문화는 많은 문제가 있었어요. 남성 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고 …. 전 이런 운동권을 지탱해 주었던 보이지 않는 희생양 중의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휘몰아치는 옛 기억에 눈물이나 줄줄 흘리며 청승 한바닥을 쳤을 뿐. 카메라가 꺼지고 조 피디에게 덧붙였다. “근데 나 이런 이야기 지금 이 정부에서는 하고 싶지 않은데 …. 보수언론의 먹잇감이나 되는 거 아닌가 몰라?”
동지라 믿었던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한 여성은 가치관과 세계관이 무너져 내리면서도 나처럼 현 ‘상황’을 걱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 실존은 어떤 상황논리나 조직논리보다 우선하는 법. 그의 용기는 그래서 더욱 빛을 발한다. 바라건대 민주노총을 비롯한 운동권 조직들도 이번 기회에 약자를 배려하는 세심한 조직으로 환골탈태해 주길. 이 어두운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서라도.
김연/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