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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를 생각하며2009.01.12 04:22 블로그에도 썼지만 나누고 싶은 이야기여서 약초밭에 올려봅니다. 빅토는 살아있다면 한국 나이로 65세를 맞았을, 자유롭고 가볍게 살았던 남자입니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맘껏 술 마시고 담배 피우다 세상 떠난 사람의 이야기를 병원 게시판에 올려서 어쩔거냐 싶은 게 사실이지만...^^; 빅토의 나이를 알게 된 건 죽고 나서였어요. 조금 놀랐지요. 나이를 묻지도 않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을 만큼 누구와도 허물 없이 대화할 줄 알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빅토는 파티 친구였다. 우리는 다니 생일파티의 매년 고정멤버였다. 빅토와 야네케 부부는 네덜란드에서 두 시간 기차를 타고 왔다. 지난 신년여행 때 신세진 위트레흐트 집은 빅토가 마지막 두 달을 보낸 곳이었다. 이젠 야네케 혼자 남았지만.
지난 해 봄 빅토는 세상을 떠났다. 술 담배가 과해서였다고 한다. 아침부터 밤까지 맥주를 마시고 줄담배를 피우고 음식은 아주 조금만 먹었다. 끊어야 한다는 것은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빅토는, 술과 담배와 섹스가 없는 삶을 바라지 않았다. 풍류와 낙천성은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거라고 했다. 그래서 떠나는 날까지 원하는 방식대로 살았다. 생애 마지막 사진은 병실에서 카드놀이 하는 모습이었다. 야위었지만 빅토 다운 표정으로 마지막까지 유쾌하게 지냈다.
빅토를 몰랐으면, 야네케를 몰랐으면, 그들의 나이버르 친구들을 몰랐으면, 술 담배를 끊지 않고 죽어버린 어리석은 중독자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빅토는 선택을 한 것이다. 원하는 방식으로 살다 가기를. 그것을 야네케와 친구들은, 각자의 판단이 어땠든지 간에, 빅토의 선택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아무도 담배를 끊으라거나 술을 줄이라거나 밥을 좀더 먹으라고 잔소리 하지 않았다. 그거라면 의사가 충분히 이야기했고 누구보다도 빅토 본인이 가장 잘 아는 사실일 터였다.
빅토의 장례식은 파티였다. 가까운 가족과 친한 친구 몇몇만 초대받는 일반적인 장례식이 아니었다. 빅토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사정이 되는 한 다 모였다. 검은 옷 입고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생전의 빅토와 어울릴 때처럼 웃고 떠들며 빅토에 대해 이야기하고 기억을 나누었다.
빅토의 신상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 건 떠난 후였다. 그 전에는 1년에 한번씩 만나 이야기하는 파티 친구였을 뿐이다. 빅토는 상대가 누구든 어울려 이야기하길 좋아했다. 낯선 사람과 말문 트는 데 오래 걸리는 나에게도 처음 본 순간부터 편안하게 두 시간이 넘도록 이야기를 시켰다. 빅토는 요리도 좋아했다. 야네케가 재료를 썰면 빅토가 요리하고 상을 차렸다. 두 사람은 대학 시절 만나 부부가 된 후 30년 넘게 같이 살면서 단 하루도 떨어져 본 적 없는 단짝이었다. 파티도 여행도 언제나 함께였다. 우리가 함께 보낸 지난 연말은 야네케에게는 빅토 없는 첫 실베스터였던 것이다.
빅토가 술 담배를 줄이고 좀더 오래 살아 주었으면 좋았을 거라고는 생각한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많으니까. 그러나... 내 몫의 삶이 내 앞에 있는 것. 그 삶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 확실히 알고 있는 것. 그렇게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그걸로 됐다. 빅토는 자신의 충만한 삶을 남기고 떠났다. 좋은 사람에 대한 추억, 좋았던 시간에 대한 기억은 마음과 삶을 살찌우는 따뜻한 밥이다.
덧글. 자녀도 없이 아내 혼자 남기고 술담배 안 끊고 먼저 죽어버린 건 이기적이지 않나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분명 더 살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야네케는 새해에 환갑을 맞습니다. 그러나 본인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슬픈 건 슬픈 거지만 각자의 몫은 따로 있다는 걸 너무나 당연하게 수용해서요. 어른인 이상 자기 인생은 자기가 결정하고 마음에 들든 안 들든 간섭할 수 없다는 거지요. 자기 뜻대로 하는 게 사랑이 부족해서도 아니라는 거구요. 아마도 평생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을까요. "애정이 속박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는 이런 걸꺼라고 생각합니다.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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