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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읽고! 걷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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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년의 일기장, 그날 나는 내가 싫었다.2009.01.05 11:59 저는 정말 노구를 이끌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농사를 지었습니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밭에 나가서 일하다가 호미가 헛돌 때 일어나곤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추수를 하려니 이게 사람이 먹기엔 뭔가 좋지 않은 점이 있어서 팍 쏟아버리고 다시 짓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며칠 전에 모두 끝냈습니다. 긴장이 풀려서 폭삭 삭아내려앉을까봐 신경 쓰고 있습니다. 아직 일은 좀 남았습니다. 뉘도 골라내야 하고 쭉정이도 골라내야 합니다. 포장지는 어떤 것으로 할까, 봐야 합니다.
작대기를 짚고 배낭은 무겁게 지고 아직 그다지 춥지 않은데 유명 등산복 딱지가 콱 박힌 점퍼를 입었는데 아, 어찌나 맘이 짼한지. 엇그제 짤렸구나. 명퇴금이나 받았나. 새끼들은 아직 학교에 다닐 것 같은데....이게 저의 직업병입니다. 무엇을 보건 그 자리에서 쌀 한가마니 너끈히 지어냅니다. 등산이 무엇인지 안다면 저런 차림을 하지 않을 건데 얼마나 저자거리에서 혼이 났으면 저리 무장을 했을까, 아 불쌍해라 아들이여!
실직으로 인한 정신적 열패감이며 가족을 차마 마주 보기 힘들 그에게 인간적 친절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가 나름대로 나의 친절을 저울질 했는지 다소 경계하던 것을 푼 듯한 표정으로 웃으며 자신을 기다렸느냐, 그러다라고요. 그러더니 내가 장갑을 끼지 않은 것을 보고 자기 것을 끼래요. 싫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배낭을 내려서 여자용 장갑이 있다며 꺼내주더라고요. 순간 약간 느낌이 이상했어요. 거절하고 싶었지만 꼈어요.
그는 칼바위 능선으로 해서 대동문까지 가서 진달래 능선으로 내려간대요.손금보듯 훤한 곳이지요. 마침내 내가 좋아하는 칼바위로 올라가는 지점에서 그가 내게 우회하자고 그러더라고요. 할 수 없이 그렇게 하자고 했어요. 나는 대동문까지는 가지 않을 생각이었고요. (왜냐면 거긴 싫은 이유가 있어요.) 우회로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우회로부턴 그가 나를 앞지르더라고요.
그러더니 쉬자고 해요. 그가 앉아서 사과를 꺼내더라고요. 나는 마주보기 싫어서 옆으로 앉았더니
약초궁주가 이 지점에서 내 옹졸을 욕할까 걱정하면서요. 그는 내게 대해 묻고 저는 어떤 직장을 다니는데 야근하고 낮에 잠 좀 자다가 등산을 왔다고, 지금 입고 있는 점퍼는 미국에 가서 샀다고, 수유 시장에 가서 막걸리 한 잔 하고 가라...등 등.
대동문과 반대인 칼바위로 기어올라갔지요. 기분이 내내 찜찜하더라고요. 왜 나는 연민을 가지는가, 등등 해서. 왜 잘난 남자, 그러니까 나에게 막걸리라도 사주려 하는 남자에게는 질겁하는가, 왜 내가 무언가를 해줘야 하는 남자만 좋아하는가, 등등 많은 반성을 하면서 산을 내려왔습니다. 집에 와서도 내내 찜찜했습니다. 지난 수십년 간의 내 남성관계를 돌아보며 스스로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세상엔 이런 여자도 있고 나와 같은 남자도 있겠지, 해도.... 내가 싫더라고요.
~~에이 씨. 촌년 온냐를 콱 쥐어 박고 싶다 말로만 외롭다 어쩐다 해쌓고는 막상 닥치면 혼자 엉뚱소설이나 쓰고. 지 시력나빠 멀쩡한 사람은 구박하고 내친다. 히스클리프같은 나쁜남자, 불쌍한 남자에만 필꽃혀 물 엔간히 먹어도 그게 사랑이고 헌신인줄 아는 촌년 이번 생에서 얻은 중병이다. 불치병인듯 싶다.
차라리 내가 북한산 칼바위 길목에서 그를 만나 사과도 깍아주는대로 낼름 받아먹고 수유리에서 막걸리도 나눌걸. ...낄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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