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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읽고! 걷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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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사람은 모두다 이상했다.-김해자2013.08.21 14:02 죽을 만큼 천천히 거대한 배가 항구에 들어서는데 아주 천천히 움직였습니다. 죽을 만큼 천천히 죽음의 속도로 땅에 다가가더군요. 63빌딩 눕혀 놓은 것보다 거대한 배가 1톤 트럭이 끄는 로프 하나로 땅과 만나러 가더군요. 그러나 끝내 다는 닿지 못하고 몇 센티미터 남겨둔 채 다시 떠나더군요. 아, 참 통 큰 사랑이다! 저 지극한 침묵의 속도가 정말 큰 사랑일지 모른다. 그러니 그 큰 사랑이 백 년 안에 완성될 리가 있겠는가. 하여, 이번 생에 다는 못 닿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큰 배가 항구에 접안하듯 큰 사랑은 죽을 만큼 느리게 온다 나를 이끌어다오 작은 몸이여. 온 몸의 힘 다 내려놓고 예인선 따라 가는 거대한 배처럼 큰 사랑은 그리 순하고 조심스럽게 온다 죽음에 가까운 속도로 온다 가도 가도 망망한 바다 전속력으로 달려왔으나 그대에 닿기는 이리 힘들구나 서두르지 마라 나도 죽을 만치 숨죽이고 그대에게 가고 있다 서러워하지 마라 이번 생엔 그대에게 다는 못 닿을 수도 있다 _「데드 슬로우」 서두르고 살았습니다. 정신없이 살았습니다. 스스로에게 쫓겨 죄인이라도 되는 듯 세상에 떠밀려 살았습니다. 과제로 살았고 숙제로 살아왔습니다. 살아 내었고 살아졌습니다. 그 형벌로 죽음이라는 물건이 늘 저를 기웃거리는 운명이 되었습니다. 죽음이라는 친구를 가까이 두니 생이 이렇듯 찬란합니다. 천천히 숨을 쉬니 하루가 깁니다. 천천히 글을 읽으니 갈피갈피 순간순간이 음악처럼 흘러갑니다. 천천히 감자를 먹으니 은빛 포근포근한 전분이 내 몸으로 스며듭니다. 천천히 기린봉을 바라보니 꼭대기에 나뭇잎 흔들리는 것도 보입니다. 천천히 공중을 바라보니 새가 땀방울 떨구며 파닥거리는 게 보입니다. 사람도 자연도 사물도 지긋이 바라보겠습니다. 천천히 그냥 만나겠습니다. 천년만년 시간 저축한 사람처럼, 겁을 넘어 영겁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을 무한한 시공간을 보험 든 사람처럼. 햇살에 빛나는 생의 갈피갈피, 바로 이 순간에 붙들어 매고 싶습니다. 도달은 우리의 목표가 아닙니다. 이룸은 우리의 뜻이 아닙니다. 다만 한없이 진심으로 사랑을 향해 가는 것, 다만 한없이 정성껏 사랑의 눈으로 어루만지며 가는 것, 그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이자 유일한 몫입니다.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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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된 독사
“별명이……” “네. 독사였슴다.” “그렇다면 문신도 혹시 독사……” “아닙니다. 쌍룡임다. 양쪽 두 마리씩 네 마리였슴다.” 키득거리던 강의실에 일제히 폭소가 터져나왔다. 사실 웃을 대목은 아니지만 이미 형성된 공감대가 있어선지 대답하는 자도 질문하는 자도 듣고 있는 자들도 모두 개의치 않았다.
여섯 번 수감에 17년 옥살이. 제 나이 딱 절반을 감옥에서 보낸 그는, 내가 자연스레 “별이”라 부르면 당연스럽게 “네” 하고 대답했다. 손이 베일 정도로 잘 다린 먼지 한 톨 안 묻은 검은 바지에 눈부시게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그는 이력이 의심스러울 만치 긴 속눈썹이 드리운 맑은 눈을 지녔다. 그는 정말이지 별 같았다.
여섯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와 살며 숱하게 배를 곯던 별이는 중학교 갈 무렵 ‘조직’에 엮여 제 말마따나 “징글징글하고도 숱하게 나쁜 짓”을 하고 소년원을 들락거렸다. 조직의 3인자까지 올라가 그 바닥에서 출세한 후 이어진 마지막 징역은 길고 혹독했다. 30명이나 되는 동생들 살리려 세 명이 사건을 뒤집어쓴 다음 둘마저 내보내고 홀로 7년을 견뎠다 했다.
그야말로 조직의 쓴맛을 볼 대로 다 본 다음, 바늘로 심은 황룡을 바늘로 다시 파내는 고통을 견디며 새로운 삶을 꿈꾸는 청년이다.
그날 강의는 2인 1조로, 한 사람은 어머니가 되고 한 사람은 아기가 되어 번갈아가며 따라 그리기를 했다. 한참 열심히 그림도 그리고 글씨도 쓰던 별이의 손동작이 갑자기 멈추었다. 살짝 훔쳐봤더니 그의 눈시울이 불거져 있었다.
잠깐 나갔다 오라고 손짓을 하니 별이 먼저 조용히 나가고 짝 노릇하던 누이도 강의실을 나갔다. 잠시 후, 눈이 부어 돌아온 둘은 열심히 무언가를 썼다. “어머니, 저는 불효자입니다. 어머니 죄송해요. 어머니…… 어머니…….” 둘은 수식어보다 어머니라는 명사가 더 많은, 부칠 수 없는 편지를 쓰고 있었던 게다.
잠시 후, 이어 붙인 전지 위에 심장수술을 몇 번 한 형이 눕고 나머지가 몸의 외곽선을 따라 크레파스로 선을 그리고, 각자 아픈 데를 표시했다. 누구는 ‘발목에 실밥’을 그리고 누구는 ‘번개가 치는 머리’를 그리고 누구는 ‘지진 난 등뼈’를 그리고 누구는 ‘도끼질이 진행 중인 정강이와 복사뼈’를 그렸다. 드디어 한 사람 속에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들어간 몸을 벽에 걸었는데 상처와 환부를 둘러싼 육신에 풀과 나무와 꽃이 만발해 있는 게 아닌가!
우와,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거의 보이지도 않게 작게 쓴 ‘분홍글씨’가 여기저기 박혀 있는 것이었다. 춤추며 분홍빛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글자들! 별이 짓이었다. 그는 제가 겪은 아픔 대신 동생과 형 그리고 누이 들의 통증부위를 따라다녔던 것이다.
아프지 말라고, 아파도 잘 견디라고, 힘들어도 부디 행복하라고…… 별은 속삭이며 날아다녔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