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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매의 바베트, 한의사 이유명호#

그러나 ‘바베트의 만찬’은 프랑스식 정찬으로만 가능한 건 아니다. 서울에서의 마지막 몇 년 동안 나는 죽이 잘 맞는 여자들 ‘십자매’와 어울렸고, 우리 ‘십자매’들 가운데에는 바베트 역할을 하는 여자가 있어서 다들 행복한 한시절을 보냈다. <몸을 살리는 속풀이 다이어트>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자궁> 등을 펴낸 꽁지머리 한의사 이유명호가 바로 그녀다.

인간의 아픈 몸과 치유가 주관심사인 그녀는 자연히 몸을 살리는 음식에 관심이 많았다. 게다가 그녀 자신이 먹는 걸 무척이나 좋아했고, 맛난 걸 지나치게 밝히는 집안 내력과 본능적인 식탐 때문에 조금은 괴로워했고, 그러다보니 몸에 좋은 음식을 적당히 먹는 방법을 끊임없이 탐구하고자 노력했다. 좋은 밥집을 찾아내서 세상에 전파하고 그 집에 데려가 그 음식을 먹이지 못해 안달했다.
때로는 바베트처럼 직접 오찬이나 만찬 자리를 주선하기도 했다.  명호 언니는 아는 여자 중 누군가가 자식이나 남편, 연인, 직장, 진로 문제로 심하게 마음앓이를 한다 싶으면 그런 자리를 어떻게 해서라도 마련했다.

그녀가 장만한 음식은 좋은 재료만 쓴다는 단골집에서 사들고 온 정갈한 수제 만두이기도, 단골 백반집 아주머니가 싸준 게장이기도, 본인이 아침부터 서둘러 준비한 초간단 안주용 야채 샐러드이기도, 거품을 물면서 칭찬하는 단골 김밥집 계란말이 김밥이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의 조합으로 거창한 풀 코스 만찬을 차린 경우도 더러 있었다. 자기가 바쁠 때는 양곰탕과 매운 낙지볶음이 주특기인 유시춘 언니를 쉐프로 징발하기도 했다.

한번은 십자매의 막내격인 유지나(영화평론가. 동국대 교수)가 언니들을 위해 특별히 냉면을 대접하겠노라면서 우리를 자기의 아파트로 초대했다. 평소 ‘공주’로 놀림받던 그녀인지라 당연히 배달 음식을 시키는 줄 알았는데, 웬걸 그녀는 열두 시간이나 폭폭 끓여서 식혀서 체에 거른 진짜 ‘평양식’ 육수로 평양 냉면을 만들어 내놓았다. 어머니가 평양 여자라서 냉면에 깊은 애정과 열정을 가진 그녀는 어머니처럼 면도 직접 만들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서 아쉽다고 못내 안타까워했지만, 우리 모두는 지나의 냉면에 열광했다.

그런 음식과 술을 먹고 마시면서 그날 만찬 소집의 계기를 제공한 당사자는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가슴을 쥐어뜯고, 가끔은 엉엉 울기도 했다. 다른 여자들은 비슷한 경험을 꺼내놓으면서 다독이고, 위로하고, 함께 분노하고, 같이 울어주었다. 그러다가 집으로 돌아갈 무렵에는 훨씬 가벼워진 기분으로 언제 그랬냐는 듯 깔깔거리면서 헤어지곤 했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도시 생활과 기자 생활의 끝자락에서 그녀가 주선한 자리에서 큰 위로를 받았다. 이십오년 기자질을 끝내고 사표를 썼다는 것도, 꿈꾸던 산티아고길을 떠나겠노라고, 고향 제주로 내려가 길을 만들겠다고 말한 것도 다 그 자리에서였다.

2007년 고향 제주로 돌아온 뒤로는 그녀의 만찬에 제대로 참석하지 못한다. 그녀가 가끔 전화를 걸어, 네가 서울에 없으니 참 허전하다, 예전처럼 우리도 자주 못 모인다, 이번엔 무리해서라도 꼭 좀 올라와라, 징징 거린다. 그때마다 부응하진 못하지만 대신 이제는 내가 주위 여자들을 위해 가끔 제주에서 소박한 만찬을 차린다. 예전에 그녀가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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