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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긴 편지

2012.04.06 10:49

약초궁주 조회 수:1320







동사무소에 아들녀석 장애등록 서류를 낸 날 참 하염없이 울었네.

아 이 상실감 박탈감이란.....,

그동안 내가 이루어 왔던거, 내가 앞으로 이루어갈 거 그 모든게 다 무너져 내리는 느낌.

서류접수를 받는 담당 공무원 두분을 참 민망하게 만들고 말았지.

난 어쩔 땐 삶을 지속해야하는 이유를 상실하곤 한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그냥 콱 죽고 싶다.

내가 꿈 꾸어 왔던 아들과의 삶이 점점 더 멀어져 버리는 지금 이순간 이 삶을 지속해야할 이유를 찾기엔 너무 옹색하다 그런 생각들......,



처음엔 주인공의 편지글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같은 자리를 반복해서 읽고 있었다.

재서 생각으로 머릭속이 꽉 차있었으니까.

한페이지 한페이지.....,

중반을 넘어가면서 나는 이 주인공의 독백적인 편지글에 푸욱 젖어 들었다.

송내 내 연구소롤 가는 1호선 지하철 속에서 덜컹덜컹 나는 라마툴라이와 깊히 닿아있었다.



라마툴라이:

난 계산하지 않고 내가 받은 것 이상을 주었어. 나는 남자와 짝을 이뤄야 자기실현을 하고 피어나는 여자들 부류에 속해. 짝을 떠난 행복은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너를 이해하고자유로운 여성들의 선택을 존중하면서도 말이야.

나다!

꼭 나다. 내가 재서빠를 사랑하는 이유.

절대로 그런 남자와는 못 살 것이다 주위 여자들이 말해도. 나는 이 남자를 사랑했다. 그리고 여보란듯이 그 남자를 닮은 아이를 낳고 싶었다. 그리고 낳았다. 이제 행복할 일만 남을 것 같았던 탄생! 축복! 환호! 그런 것들은 아들이 성장함에 따라 서서히 스러져갔다. 사랑하는 남자의 닮은 아이를 낳았으나 전혀 다른 삶을 가도록 하고 있는 아이...., 비범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저 평범해주면 좋으련만.



무엇을 잘못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되엇을까?

남자를 사랑하고, 그 남자를 닮은 아이를 하나 낳고 싶다는 내 작은 욕망이 그렇게도 잘못되었던 것일까?

내가 벌 받을 짓을 한 것은 무엇일까?

왜 하필 나인가?

내가 장애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밥벌이를 하기 때문에 생긴일일까?



내가 전공한 특수교육이 참으로 무색하게 느껴졌다.

내 아들이 이러한데, 내가 지금 무얼하고 있는 것이지.

내가 행복할 수나 있을까?

내가 내 남편과 앞으로도 처음처럼 사랑하면서 살 수 있을까?

그가 도망가지는 않을까?

건강한 아이를 밖에서 낳아오면 어떡하지?

난 어떡해야하나....,

죽고 싶다.

죽고 싶다.



그러나 내 삶도 계속되었다.

난 죽지도 않았고,

난 이혼하지도 않았다.

남편은 밖에서 아이를 낳아오지도 않았고,

난 연구소 문을 닫지도 않았다.



미친듯이 책을 읽어 댔다.

내 아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

그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책들도 읽어댔다.

왜냐하면 그와 사랑이 깨지고 나면 나는 더 이 삶을 지속할 자신이 없었으니까.



하루하루 삶이 지속되면서

어느덧 난 조금씩 내 아이를 지지해주는 엄마로 바뀌어가고 있다.

어느덧 남편을 더 이상 물어뜯지 않고 이해하는 아내로 바뀌어가고 있다.



난 아직도 라마툴라이의 독백을 마지막까지 읽어내지 못했다.

그녀의 삶이 어떻게 지속되는지 아마도 오늘 덜컹거리는 지하철 속에서 듣게 되겠지.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와 30년!

그리고 12명의 아이!

나는 버림받았어 그러나 나는 삶을 지속했지라고 내 귓가에 삶을 지속해야하는 이유를 들려주는 그녀의 마지막 독백을 나는 오늘 다 듣게 될 것이다.



이제 어떤 상황이 와도

죽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리라.

내 아들녀석이 더 이상 나 자신의 치장거리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녀석의 지지자가 되기 위해서 평생을 노력해야하는게 내 운명이라면 그리하자.

죽을 때까지 배워도 결코 그런 멋진 엄마가 되지 못한다하더라도 좋다.

나는 그런 엄마가 되기 위한 과정을 결코 멈추지 않을테니까.

살아야겠어.

어떤 상황에서도 말이지.

라마툴라이가 다시 운전을 배우고,

전구를 끼우고 시장에서 장을 보는 기술을 다시 배우듯.

예측되지 않았던 일들이 벌어지면

그것들을 다시 배워나가면 되는 것을.

삶을 그렇게 지속하면 되는 것을.......,




랄라
  처음부터 감사한 마음이 든다는 것은 위선이다. 부정부정부정부정!! 내 밑바닥 욕심이 다 부정되고서야 드디어 참 긍정이 나온다. 생명줄을 끊은 것은 아니지만 심리적으로 완전히 죽어야만 살 수 있다니 참 아이러니다. 어제 난 한어머니와 손을 잡고 울었다. 만5세 아이를 둔 엄마!

갑상선암 수술~~
장애진단~~
아름답던 그녀의 수척해진 얼굴로 산정호수에 뛰어들고 싶다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내 모습이 보였다. 딱 그때.
난 그녀의 울음을 막지 않았다.
다만 앞뒤 수업시간 간격을 넉넉히 해 놓고 가만가만 그녀의 말을 들어 주었다.
난 안다.
그녀가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울다 웃다 했다.
요번에 서울대 재서 검사 받으면서 난 내 직업도 밝혔노라고. 동안 엄마가 직업이 저런데 애는 왜 저모양이야 이런 소릴 들을까봐 말도 꺼내지 않았었다. 그리고 언제 아이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냐는 말에 처음부터요 아이에게 젖꼭지를 물릴 때 그 처음부터 저는 알았어요 직감적으로. 그말에 상대 엄마가 웃는다. 그래요 쌤 저도요. 아이를 품에 안을 때부터 내 품속으로 폭 안겨 들어오지 않을 때부터요.

난 또 이야기했다.
이제 그런 아이가 품에 들어옵니다. 인형놀이도 하고 소꿉놀이도 하고. 남자아이들은 레로세트로 소꿉놀이를 한답니다. 찌찌도 빨아보고 나를 힘껏 안아주기도 하고. 인지가 발달하면서 감정도 같이 발달하나봐요. 꺼꾸로 발달이 이루어지기도 한다는것! 끌어안고 뽀뽀하고 사랑하는 그것 앞으로 두고두고 배울 일이지요.

그렇게 그 엄마는 돌아갔다.
한주 하루 나를 만나러 오는 시간이 당신한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지만 따악 6개월만 날 만나러 오라고. 그때 떠나도 늦지 않으니. 울었더니 속이 시원하다하고 간다. 그래요 저도 참 많이 울었네요. 저도 그때 제 이야기를 들어주는 한 사람이 있었어요. 제가 그분한테 받았던 배려 그거 당신한테 하는 겁니다.

삶은 이렇게 지속된다.
아!
출근해야지. 내 삶을 지속하러 가야지. 2012-04-06
09:13:58




랄라
  참아주고, 기다려주고, 배려해주고, 세워주고, 약지어주고, 책읽게 해주고, 눈물받아주고, 글쓰게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해주고....., 그 한사람이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쌤! 받았던 배려 사랑은 내 속에만 고여있는게 아니라 다시 사랑이되어 남에게 돌아가는 이치를 깨닫고 있는 나날입니다. 오늘 참 말이 많아지네. 2012-04-06
09:17:36




약초궁주
  아프리카 여성작가. 그럼 사막의 끛 정도. 외리스디리 겨우 아는데.

우린 넘 멀리 떨어졌다고 서로 모른채, 이해불가인채 살아가고있자너.

이토록 긴편지- 짧고 간략한 문장속에

어쩜 단순명료하게 여자들의 결혼과 삶이 녹아들어있는지.

이책을 권해주신 분이. 빌려준거거든.

올해의 베스트 10에 꽂아 두었어.

어제 아침엔 강가를 걸어 오며 엉엉 통곡하며

아무도 없는데 삿대질하며 ...그동안 고였던 수모와 슬픔을

쏟아 냈지.

맨날 눈물그렁그렁하며 살지 말고

봄물 풀려 흐르는 강변에서 날잡아 통곡데이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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