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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장미파 언니. 걸어서 강화섬 한바퀴 상편

2008.10.10 17:50

yakchobat 조회 수:2699 추천:174



 

들장미파 언니, 걸어서 강화 섬을 돌다.


토요일....무조건 떠났다.

무조건 떠났다. 일상은 나를 전전긍긍 똥 마린 강아지처럼 미치게 했다. 붙박이 장롱같이 들러붙은 반복적인 삶에 연줄 엉키듯 꼬이는 새끼줄도 넌더리가 났다. 왜 또? 안티 성폭력대회는 출전한다고 그랬을까. 결국 머리에 깻잎을 붙인 소녀로 변장하고 후배들과 ‘바바리맨 퇴치법’ 공연을 했다. 다시 무대에 오를 일을 꾸미면  사람도 아니다’ ‘그런 말한 사람이 벌금내자’ 이러길 벌써 일곱 번째. 양치기 언니들이다.


원래 금요일 밤 설악산 대청봉 산행팀이 떠나기로 되있었다. 땡하고 마차가 호박으로 변하는 시간에 버스를 타서 새벽에 한계령부터 올라가는 무박산행. 좌우경치도 안보고 꽁무니만 따라서 숨차게 오르는 산행은 질주와 경쟁의 속성과 다를 바 없는 속도전. 원하는 바가 아니다.  차라리 운기조식하며 느릿느릿 오래도록 걷고 싶다. 걸어서 바다를 만나자. 강화 섬을 돌자.


다리를 건너자마자 차에서 내려 48번 국도를 버리고 북쪽 해안아를 따라 세 여자는 걸었다. 6월인데도 땡볕 아스팔트길은 후끈거린다. 고개를 넘으니 손에 잡힐 듯 바다건너 북한 땅이 지척인데 나무 한그루 없이 헐벗은 민둥산이 안쓰럽다. 길 끝에 해병대 초소가 막아선다. 걸어서는 못 들어간단다. 말귀를 못 알아듣겠다. 아니?...금강산, 개성, 평양도 가는 세상이 되었건만 치근대는 여자들을 귀찮아하며 파리 쫓듯 손 사레를 친다.

 

근데 자동차는 보내주네. 허참. 섬 일주를 계획한터라 삥 돌아서 갈 우리가 아니다. 대로에서 쫓겨나 논두렁 건너 작은 길로 접어든다. 고개엔 하얀 찔레꽃들이 피어 은은한 향기가 감돌고 엉겅퀴 망초꽃 창포 토끼풀도 정겹다. 시골집 마당에 피어난 탐스러운 모란꽃과 줄지은 넝쿨장미는 아찔하게 붉다. 도시탈출 성공을 자축하며 겨우 반나절 걷고 조직이름을 ‘들장미파’로 정했다. 깔깔.


길가에 허름한 원두막 발견. 이게 왠 방이냐? 신발까지 벗고 올라가 그대로 퍼질러 누웠다.

“요즘은 김매기하다가도 배달이 온다는 디 이런데서 냉커피나 한잔 시켜 먹으면 좋겠다“는 오하라의 군시렁에 마을회관 이름을 보고 114에 전화 해서 다방을 물었다. 당연히 있을 턱이 있나. 가물거리며 졸다가 오토바이 소리에 깨어보니 동네아저씨다. 낯선 과객들의 말을 듣더니 집에 가서 보온병을 가져오셨다. 커피 배달 소원 풀었다. 하하하.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어느새 끼어든 아저씨가 두 명 합이 셋, 우리도 셋이다. 졸지에 번개팅. 민망;;


걸으면서 줄기차게 붙들고 늘어진 화두는 ‘먹기’. 나날이 늘어가는 식탐에 늘어가는 몸집. 버겁다 버거워. 자. 천천히 조금씩 먹기를 하자구...젓가락 양부터 흘리는 탓하지 말고 조금씩 집자구. 아무리 목구멍에서 넘기라고 잡아 당겨도 오래 씹자. 입 작은 개구리처럼 조그맣게 집어넣고 천천히 음미하면서....꾸울꺽.

느긋하게 잘 먹은 것은 좋은데 아뿔싸. 청양고추의 화끈한 유혹에 된장 찍어 먹은 것이 화근이었다. 어쩔수 없이 길가 숲 속으로 들어갔다.(이하 편집) 뱀한테 궁둥이 물릴까봐 벌벌 떨었다. 앞으로 고추는 조심해야겠다. ㅋㅋ



일요일....꿈꾸며 걸었다.


새벽부터 걷는데 일요일이라 도로에 차가 많다. 상쾌 신선한 공기에 산들바람에 홀린 듯 걷노라니 길가에 앵두나무닷! 다들 잽싸게 달라붙어 입속에 한웅큼 넣고 주머니에 담고 좋아서 어쩔줄 모른다. 새콤한 앵두가 입속에 터지니 우와...눈까지 밝아지는 듯 피로가 싹 가신다. 쉬려고 길가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우와~~운동장 한쪽이 호수다. 겨우 두발자국 들어선  것 뿐인데 담장 밖에선 안보이던 풍경을 만난 거다. 시소도 타보고 벤치에서 참외를 깎아 먹었다. 인간이나 사물이나 마음을 기울이고 눈길을 줘야 진면목의 일부라도 드러나는 거구나. 겉핥기식으로 스쳐간 인연, 지나쳤던 순간들을 잠깐 아쉬어 했다.


논에는 하얀 도포자락을 휘날리는 백로들이 우아하게 거닐고 있다. 포플라 잎새가 재잘거리듯 바람결에 나부낀다. 논에 여릿한 모들이 파릇파릇 자라서 연두 들판이다. 가르마처럼 뻗은 수로가 손짓하는대로 옆길로 새서 돈다. 걷기가 편하고 좋기만 하진 않다. 난폭한 자동차가 부르릉 뀌어대는 방귀가 고약스럽고 걷는 사람을 위한 갓길조차 없으니 옹색하기 찍어 없다. 차를 마주보면서 눈에 잘 띄는 옷을 입고 걸어야 한다. 지옥은 천국으로 만들 도로의 반사열에 얼굴은 석양주 마신듯 벌써 붉은 노을이다. 딱딱한 아스팔트에 발뒤꿈치가 아파서 두꺼운 양말을 신고도 운동화 바닥에 생리대를 깔았다. 그제서야 푹신하다. ㅋㅋ

석유도 아끼고 이산화탄소도 적게 배출하고 공기오염과 지구 온난화를 막으려면 보행자 천국을 만드는 정책이 절실하다. 한낮이 지나서 마니산이 보이는 서쪽해안에 닿았다. 30도 넘는 날씨에 걸어야할 피치 못할 사연도 없으니 느티나무 정자에서 꿀맛 같은 낮잠을 잤다. 일몰까지 바닷자락을 끼고 도는 길이다. 오랫동안 지켜본 낙조. 해무 짙은 수평선에 해가 달걀노른자처럼 익었다.


섬엔 일주도로 공사 중이라 큰 트럭들이 질주한다. 산을 통째로 무너뜨려 해안가에 딱 붙여서 아스팔트를 깔면 조립식 가건물에 횟집부터 다닥다닥 들어서고 간판이 어지러울 건 안봐도 비디오. 섬 둘레 100km면 자동차로 1시간 반, 생선회 몇 점으로 배불리고 ‘볼장 다봤다’며 쓰레기만 남기고 돌아갈 도시인들만 꼬일 뿐. 관광단지니 방조제니 성장 환타지에 희생시킨 환경은 한번 망쳐버리면 회복불능이다. 점령군처럼 밀고 들어가 개발하고 파먹다가 폐기시키고 다른 곳으로 몰려가 또 망쳐놓으니 우리가 바로 메뚜기 떼다.

 

강화는 산과 들, 바다 풍광이 기막히게 어우러진데다가 세계 5대 갯벌을 가진 섬이다. 청동기시대 고인돌부터 섬 전체가 유적지다. 갈매기는 바람의 등을 타고 날고 철새들은 북쪽에서 발진하여 강화 섬에 내려앉는다. 섬 북쪽의 민통선 철조망 안에는 ‘흙길’이 소롯하게 남아있다. 사람 발길이 금지된 갈대밭에 새들은 알을 까고 새끼를 키운다. 청둥오리는 뒤똥거리며 수풀에서 나와 유유자적 물놀이를 하다가 때가 되면 철조망을 보란 듯이 훌쩍 날아 안쪽 들판에서 배를 불린다. 강화 바닷가에 사는 함민복 시인은 말했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고.

 

그렇다. 폭이 일 미터도 안 되게 철조망은 두 겹인데 엉겅퀴가 보라색 띠를 만들고 있다. 경계에는 꽃만 아니라 새가 날아오른다. 깡패 인간들을 접근 금지시킨 결과 자연과 갯벌은 목숨과 자유가 보장되었다. 서해에서 동해까지 ‘아스팔트’ 말고 ‘흙길’을 만들면 전쟁과 문명의 합병증으로 중병을 앓고 있는 우리나라에 단 하나밖에 없는 <평화와 자연의 순례길>이 되지 않을까. 한비야 씨와도 여러 번 같이 강화를 걸으며 말했었다.

“갯벌 고스란히 살려두고 철책선은 설치미술 삼아 외국친구들이 걷고 소문이 퍼지면 세계 평화의 메카가 되고 자연도 보존되고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으니 진짜 멋질 거예요.”

꿈만 꾸지 않고 그날이 오도록 걷고 또 걸으리라.



‘밤의 피크닉’이라는 일본소설은 고등학생들이 졸업 전에 밤을 새워 걷는 보행제가 무대다. 밤을 새워 걸으며 아이들은 사랑과 우정, 집안일. 진로고민들을 털어 놓으며 80km를 간다. 겨우 이틀 짧은 듯해도 죽순이 밤새 쑤욱 자라듯 아이들은 훌쩍 자란다. 우리도 이제부터 걷는 길을 만들면 좋겠다. 이미 섬을 뺑 돌아 광성보 초지진등 조선시대의 돈대가 수십 개 남아 있으며 땅기운이 가장 센 마니산에 낮은 산들이 아기자기하고 양명한 햇살이 너른들 가득 내리 쪼여 강화降華 아니던가. 흙길 자전거 길을 만들면 딱 좋을 천혜의 조건이다.

대관령 옛길. 문경새재길이 아름답지만 짧아서 아쉽고 감질 난다. 전국에 걷는 길을 찾고 만들고 이어서 어른 아이 국토순례하면 자연과 나라사랑 하는 마음 절로 우러나리라. ”


저녁은 식량보급 지원을 나온 선배가 꽃게탕을 사줬다. 하루분의 걷기를 끝내니 다리가 질질 끌리고 어기적거린다. 엉덩이 붙인 것만 좋아서 신나게 먹었다. 걸은 수고는 내 다리가 했지만 알고 보면 온통 협찬이다. 길가의 꽃들, 흰색 백로한테 고마움을...어머니가 당신의 낡은 등산바지를 허리를 꿰메서 줄여 주신 것 역시 협찬...식후 ‘껌’ 일발장전 해준 오하라도 고맙고 왕 언니가 물려준 하얀 잠바는 자동차가 날 피해주길 바라면서 입었다. 우아사 회원에게 선물 받은 골프양말(발목이 졸려서 가위로 잘랐다)..갯벌 펜션의 황토방값을 내준 조직원도 있으니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우정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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