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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초밭자유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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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이 시대 한국사회에 태어난 우리는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 걸까요?
눈부신 봄볕 아래 활짝 피어난 벚꽃들은 황홀하기만 한데 멀리 하려 해도 문득문득 들려오는 이런저런 뉴스들은 눈앞의 향연들을 못내 미심쩍어 보이게 합니다. 계절은 봄이되 세상은 아직도 겨울인 듯 느껴지는 것이지요.


대학 캠퍼스에서 꽃구름 아래 환한 모습으로 바쁘게 오가는 수많은 여대생들을 보면 굳이 알파걸이란 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정말 세상 많이 좋아졌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제가 대학을 다녔던 시절과는 달리 게시판들에는 여학생으로서 평등을 외치고 권리를 주장하는 당당발랄한 게시물들도 자주 눈에 띄지요. 겉으로 보기에 그녀들은 대체로 행복한 것 같고 부러울 정도로 세상을 잘 만난 듯도 합니다.

 


하지만 한껏 진보한 듯 보였던 세상이 어느 한순간, 감춰진 야만의 속살을 노출하며 그 진면목을 드러낼 때가 있습니다. 며칠 전 뉴스에 보도됐던 한 여대생의 비극적인 죽음이나 벌써 한 달여가 지난 장자연씨의 자살 사건 같은 경우처럼요.

 

 

그녀를 죽인건 아버지고 따라서 아버지가 책임져야 할 부분도...

 

다 알고 있겠지만 여대생 김모씨는 인터넷 쇼핑몰 사업을 위해 사채업자에게 3백만원을 빌렸다가 불과 1년여만에 빚이 수천만원으로 불어나 강요된 성매매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아버지가 그 사실을 알게 됐고 결국 그에 의해 살해당하고 말았지요. 아버지는 이틀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구요.


이 사건에 대한 언론들의 보도는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았습니다. ‘악덕 사채업자 때문에 생긴 가족의 비극’이라는 것이지요. 가족이라는 관점 아래 김모씨와 아버지는 같은 희생자로서 ‘함께 죽음으로 내몰린 부녀’로 묘사됐습니다. 딸을 사랑한 아버지가 주도한 동반자살처럼 오해할 만한 기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김모씨의 죽음이 악덕 사채업자 때문만이었을까요?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와 같은 피해자이기만 한 걸까요? 또 다른 가해자들은 없는 걸까요?


김모씨의 인생이 파탄나고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 데 악덕, 아니 악마적 사채업자가 일차적이고 핵심적인 원인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가 유일한 원인일 수는 없습니다. 그녀를 죽인 건 아버지고 따라서 아버지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을 테니까요. 바로 여기서 사채와는 전혀 다른 성매매, 그리고 가부장제 사회 속 여성의 성이라는 고질적인 문제가 등장합니다.

 

 

KBS 보도에 의하면 아버지는 ‘자식을 잘못 키워 수치스럽다’고 했으며 ‘딸이 룸살롱 2차를 나간 걸 알고 충동적으로 그런 짓을 저지른 것 같다’고 합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사채 빚도 문제였겠지만 딸의 성매매 행위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또 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해서 그의 살인행위가 그냥 덮어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는 안 되지요. 저는 딸을 살해한 그에게서 이슬람 문화권에 아직도 살아있는 이른바 ‘명예살인’의 그림자를 봅니다. 여성의 순결이나 정조를 가문(남성)의 명예와 연결시켜 여성의 목숨을 빼앗는 극단적 가부장제 악습인 명예살인의 논리나 정서는 이슬람 사회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성폭력이나 성매매의 피해자들을 피해자로 보지 못하고 ‘더럽혀진 여자’로 보는 곳에, 피해자의 고통과 절망보다는 가족의 명예나 수치를 먼저 생각하는 곳에 그것은 어디든 존재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장자연씨 유족들이 그녀가 남긴 문건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사람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실도 단순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죽은 장자연씨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지만 정말 중요한 게 장자연씨의 명예였을까요? 진짜 장자연씨를 위한다면 무엇보다 진실을 밝혀 사후라도 그녀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자신들이 먼저 그 문건을 폭로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김모씨의 아버지가 아무 죄 없이 당할 대로 당한 딸을 죽이는 게 아니라 사채업자에 대항해 싸우고 만연한 성매매의 피해자로서 새로운 눈을 떴어야 했던 것처럼요. 아버지에 의해 살해되던 순간 그녀가 느꼈을 그 아득한 절망은 사채업자나 술자리의 남자들이 그녀에게 준 고통과 절망에 비해 어땠을까요? 어떤 언론도 제기하지 않은 이 질문을 이제라도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고인이 된 김모씨의 아버지나 장자연씨의 유족들을 개인적으로 비난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딸을 죽인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까지 그가 겪었을 지옥 같은 시간, 장씨의 유족들이 느낄 참담한 고통을 제가 어찌 아는 척이라도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말하고 싶은 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가부장제 한국사회의 아직도 지체되고 어두운 현실입니다. 성폭력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오히려 큰 소리 칠 수 있는 바로 그 현실 말입니다.

 

 

멀쩡한 여대생을, 여배우를

어찌 그리도 쉽게 접대상품으로 전락시킬 수 있는 건가요?

 

사채업자들은 여성 채무자들을 ‘걸어다니는 담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유흥업소로 보내면 바로 ‘환전’이 되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엄연히 성매매가 불법으로 돼 있는 사회에서 어떻게 이런 현실이 가능한 것일까요? 멀쩡한 여대생을 어찌 그리도 쉽게 성매매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여배우를 접대상품으로 전락시킬 수 있는 건가요? 성매매가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면 김모씨가 성매

 

매 강요를 받지 않았을 텐데 그 세계에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몰려들어 늘 그렇게 성시를 이루는 것인가요?
성매매를 단속해야 할 경찰의 우두머리는 ‘성매매 재수 없으면 걸린다‘ ,’나도 공보관 시절 접대 많이 해봤다‘는 귀를 의심케 할 발언을 했습니다.

 

대한민국 1등 신문임을 주장하는 신문사 대표는 장씨 유족에 의해 성매매특별법 위반혐의로 고소됐습니다. 성접대를 받은 고위공직자, 유력인사들에 대한 뉴스는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단골메뉴지요.

 

 보통 남자들이라고 해서 많이 다를까요? 성매매는 필요악이고 ’피해자가 없는 범죄‘라는 아전인수격 발언들이 횡행하는 현실을 보면 왜 문제의 경찰 우두머리가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학생이던 김모씨와 대학원을 휴학 중이던 장자연씨는 과거 대학 캠퍼스에서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제가 오늘 본 환하고 명랑한 여대생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은 성공한 쇼핑몰 사업자를 꿈꿨을 테고 다른 한 사람은 스타 여배우가 되는 꿈을 꿨겠지요. 그런데 지금 두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누가, 무엇이 그녀들을 원한의 처녀귀신이 되게 한 것일까요?


저 세상에서 김모씨와 장자연씨는 서로 만났을 것 같습니다. 사채업자든 연예기획사 대표든 사람을 돈벌이의 먹잇감으로 삼는 야수들이 판치는 살인적 자본주의와, 여성을 노리개나 소유물로 여기는 살인적 가부장제에 희생된 서로를 위로하며 친구가 됐는지도 모르지요.

 

 그러면서 그녀들은 자신들의 죽음 이후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두 눈 똑바로 뜨고 주시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들의 맺힌 한이 풀어지고 똑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길 바라면서요.

 

 

정확한 이름도 알 수 없는 여대생 김모씨와 장자연씨,
당신들의 해원과 명복을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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