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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욕으로 <불멸>에 이르다.

2009.01.08 11:48

약초궁주 조회 수:1965 추천:259

치욕으로 불멸에 이르다.

 

 

독일 92억 달러 갑부

메클레 씨가 달리는 열차에 뛰어 들어 자살했다는 뉴스가 실시간 검색어 1위란다.

독일 5대 재벌에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재벌 94위라고 한다.

재산이 90 몇억불. 도저히 계산이 안나오는데...사업실패로 은행에 빚을 졌다고는 하나

다 정리해도 일반사람이 평생 먹고 살것 그이상으로 부자로는 살수 있지 않나.

 

말인즉슨 아무리 돈이 많아도 행복하지 않다는 거. 실패를 인정하기 죽기보다 싫다는 건가.

고향마을에서 달리는 열차에 몸을 날리는 과격한 방법으로 죽음을 택한 건.

그만큼 분노와 좌절이 극한에 다 달았다는 것이겠지.

 

 

세상에는 어떤 수모도 감당했던 위인들이 있다.

성기가 잘리는 벌을 받아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었던 사마천.

그는 이마에 궁형이란 선명한 먹글씨가 새겨진채

몸을 접고 움크리고  작게 말은채

가슴을 닫아걸고 귀막고 입막아 ‘사기’를 썼을듯 싶다.

 

 

그에겐 오히려 죽음이 간단한 선택이었을 것이고

삶을 이어가는 것이 치욕이었을 것이다.

헌데 비루하고 멸시받는 궁핍한 삶을 근근이 이어가며 작업을 마친 그가

어떤 생각으로 역사서를 썼는지는 나같은 사람이 짐작하기 난망이다.

남의 신발에 발을 집어 넣어봐야 사정을 안다고나 할까.

 

이런저런 후학들의 평설이 허다하지만 그의 가장 위대한 점은

치욕을 견뎌낸 것 아닐런지. 나는 그래서 사마천에게 연민이 간다.

 

 

또 한 남자가 있다.

책으로 영화로 드라마로 위인전으로 기념관으로 숱하게 울거먹는 사내 이순신.

나에게 역사에서 누굴 존경하냐고 묻는다면

주저없이 이순신과 김정호라고 말한다.

 

<불멸>이란 소설을 읽고 있는 중이다. 주인공은 이순신만이 아니다.

 4권중. 오늘 퇴근하면 마지막권을 읽을 예정이나

천천히 미뤄 두고 싶다.

 

우리는 잊고 있다. 아니 역사책이 가르치지 않았다.

선조의 무능함과 질투심과 역적모의 망상에 사로잡혀 수많은 충신들을 베어버린 일을.

이순신의 운명도 그러했다.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듯 수많은 백성의 목숨과 나라를 구하고도

결국 죽음속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간 그.

 

그에게 민심이 쏠리고 백성들의 존앙을 받을수록 왕은 함정을 파놓고

덫을 쳐놓았다.

그는 알았다. 전쟁이 끝나면 운명이 어찌될지. 살아서 부귀를 누리긴 커녕

목숨마져 내놓아야 함을.

 

 

불멸..김탁환이란 작가가 삼십대의 8년 청춘의 힘을 바쳐 쓴 책이다.

가만히 책표지에 있는 그의 얼굴사진을 보았다.

짙은 눈썹, 두툼한 코와 입술, 뚝심과 신뢰감을 준다.

 

읽으면서 점점 김훈이 미워진다. 이 책에 비하면 칼의 노래는 날로 먹는거 아닌가.

문체의 승리로 빛나는 판매부수,,,연예인들의 출연료처럼 과대포장된건 아닌지.

 

당쟁과 전쟁의 역사서. 생각도 공부도 싫고 읽기는 더더욱이나 싫었는데.

불멸은 이순신만의 책이 아닌거다.

선조 유성룡 허균 이달 한석봉..원균. 광해군 허준 그리고 수많은 장수들이

역사서가 분칠한 겉모습을 찢고 생생하게 다가온다.

 

선조만 해도 그렇다. 성웅이순신을 읽은 어린시절

납득 안되던 의문이 바로 그것이었다. 도데체 왕은 뭐하길래...

‘칼의 노래’에서도 ‘남한산성’에서조차 김훈은 왕의 시선을 빼버린다.

아예 삭제해버린 거다.

 

위엄있고 쿨한 왕은 신하들의 조아림과 보고에 ‘알았다...물러들 가라’로

멋있다. 절대 권력자를 인정하는 작가답게

왕은 권력자는 그 자체로 선이고 결점을 물을 수 없다는 속내인듯 싶다.

 

김탁환의 소설은 달랐다.

각각의 시선이 씨줄날줄로 생생하게 얽히면서 펼쳐진다.

거룩하고 위대한 장군으로 성화된 이순신이 아닌

야비하고 허약한 두려움속에서 치열하게 고뇌하는 속 남자의 모습부터

인간군상들의 적나라한 면모가 가득하다.

 

그러니 불멸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책이다.

요즘 잘나가는 경영학책이나 혹은 입에 발린 자기개발서보다 묵직하고 깨우칠 점이

아주 많다..

 

이런 생각도 해봤다. 예쁘장하고 매너좋고 손가락에 잔머리나 굴리는 요즘 남자들이

인기를 끄는 세상이다. 그래서 허기진 여자들이 오히려 히스클리프 형이나 몽상가에 홀리고

나쁜남자나 운동권을 먹여살리는 거 아닐까

온갖 종류의 사내들이 득시글거리는 이 책으로 잠시 인간의 냄새, 목숨과 피의 냄새를

맡아보는 것도 공부가 될성싶다..

 

독일의 메클레 씨가 아래 문장을 읽어 보았다면 어땠을까.

사마천이란 남자를 알았다면 또 어찌했을까.

치욕을 견디는 건 목숨을 거는 것만큼이나 위대한 인간승리가 아닐까.

그래서 난 옥소리나 다른 수많은 이들이 견디는 모습에 부르르 감동을 하고 존경한다.

 

..

.

<"장군! 떠나기 전에 한 가지 궁금한 것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래, 무엇이든지!"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앞에 우상(偶像)을 둔다고 합니다. 원장군께서는 늘 항우를 당신의 귀감으로

삼으신다고 여러 차례 언급하셨지요. 헌데 장군은 단 한 차례도 그런 말씀을 아니 하셨습니다.

장군의 우상은 누구인지요?"

 

이순신은 술잔을 비우며 잠시 호흡을 골랐다.

"우상이라.....!맞는 말이야. 누구나 자신만의 우상을 갖게 마련이지. 지금은 비록 장수의 길을 가고

있지만 다시 생을 살 수 있다면 문신이 되겠다는 말을 언젠가 자네에게도 했던 것 같군. 문신 중에

서도 사관(史官)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 사마천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여러 번 있네."

 

 

"왜 하필 사마천이옵니까? 죽음 대신 치욕적인 궁형(宮刑)을 선택 한 사람을."

이영남은 뜻밖의 대답에 고개를 갸우뚱겨렸다. 장수가 아니라 문신이라는 것만 해도 예상을 벗어난

일인데, 궁형을 당한 사관(史館)이 자신의 우상이라니,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신호 역시 그 대

답의 진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치욕은 말일세....., 치욕은 일평생을 살면서 누구나 맛보게 마련이네. 문제는 그 치욕을 얼마나 훌

륭하게 참고 일어서는가에 달렸지. 사마천의 심정을 헤아려보게. 궁형을 당하고 나서 얼마나 부끄러

웠겠는가? 평범한 사람이라면 얼굴을 들고 다니지도 못했겠지. 허나 사마천은 당당하게 <사기>를

쓴후 자신의 이름을 후대에 전했네.<사기>의 작가로서뿐만이 아니라 궁형을 당한 치욕도 고스란히

후대에 전해졌어. 나는 가끔씩 치욕을 곱씹으며 골방에서 글을 쓰고 있는 사마천을 상상한다네. 참

으로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가!

그의 눈물, 그의 의지, 그의 부끄러움, 그의 분노, 그의 사랑이 고스란

히 <사기>에 녹아 있지. 나도 사마천처럼 나의 결핍과 불행을 극복하고 싶네."

"허나 사마찬은 평생 그 결핍과 불행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장군께서는 그런 삶을 원하시오

이까?">

 

 

소원대로 사기를 남긴 사마천처럼 이순신도 역사에 푸르디 푸른 이름을 남겼다.

그는 정말 어떤 남자였을까?

행여 꿈속에서라도 만나보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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