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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밤2008.11.02 03:15
선생님 뵙고 홍대에서 '안티고네'를 읽고 모임을 가졌더랬죠. <미쓰 홍당무>를 꼭 봐야겠단 생각에 뒤졌더니 홍대 롯데씨네마는 언제 내리고 없고 대학로 CGV까지 그야말로 눈썹을 휘날리며 달려갔어요.
이경미 감독은 '잘돼가?무엇이든'에서 뭔가 힘이 있다고 느꼈었는데 아직 투박하긴 하지만 뭔가 있긴 하구나, 시종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감독이었어요. '다찌마와 리'에서 살짝 실망스러웠던 공효진이 다시금 좋아져서 기뻤고 이래저래 상콤하게 극장을 나서는데, 그런데,
엘리베이터에서부터 딱 기분이 나빠지더군요. 토요일밤 대학로라니- 온통 커플,커플,커플,커플,,, 혼자 삼겹살 구워 먹는 거 말곤 혼자하는 것에는 이력이 났다고 생각하는 저인데 확 기분이 상하더라고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면서 요상한 연상작용에 의해 기분이 점점 더 나빠져서 약도 챙겨먹지 않고 그냥 확 엎어져 자버렸습니다. 이번주 내내 잠이 부족했었거든요.
한참 자고 있는데 친구한테 전화가 왔어요. 부산에 사는 녀석인데 꼭 오늘 보자네요. 나는 오늘 회사 동료들과 관악산도 가야하고, 직장인에게 일요일밤에 한잔 하자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라고 중얼중얼해도 소용없어요. 저녁 8시에 대학로에서 보자고 빡빡 우기는 거에요. 듣고보니 뭐 못할 것도 없단 생각도 들고, 얼굴본지도 한 4년쯤 되는 것 같아서 그러고마 했어요.
이미 잠이 깨버렸고 불을 켜고 약을 데워먹으니 - 슬몃 웃음이 나더라고요. 나를 짓누르던 외로움이라는 것이 고작, 한 줌이었구나. 한 줌. 한 숨 자고 전화 한통이면 또 금세 사라질 것인데 뭐 그리 심각하게 몸을 떨었던 걸까요. 긴 호흡으로 바라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들에 휘둘리는 걸 보면 아직 청,춘.인 게 분명해요. 하하.
새벽, 밀린 옷장 정리를 후딱 해치우고 책 몇 자 읽다가 다시 잠을 청하렵니다. 반 숨 더자고 일어나서 씩씩하게 관악산에서 나무들이랑 대화 좀 하고 숨 많이 들이쉬고 그리고 대학로로 달려가야지요.
순간을 넘기면 달라지는 것들이 많다고, 다잡고 또 다잡습니다.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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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말씀이네요. 저도 잘 넘겨야 할 순간이거든요.
그런데 10년연애하고 결혼한지 5년된 저로선, 그래도 늘 외로웠고 지금도 그렇다는 얘기 해드리고 싶어요. 외로움이란거 늘 그렇게 사람에게 따라다니는 거니, 더 깊은 외로움에 빠지지 않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