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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면서 싸우자<세상읽기-김선우 시인.한겨레>2009.01.21 10:36 용산의 참혹한 죽음과 총리의 협박성 사과?성명을 들었다. 대구 시민은 수돗물 못먹는다. 다른 강물도 삽질하면 흙탕물...다 못먹는 날이온다. 차라리 부정부패하고 뇌물이나 드시고 그럼 낫겠다. 물. 공기. 땅..이런 본질적인 것을 깡그리 망쳐서 회복불가능하게 만들려 하니 화가난다.. 콧구멍이 두개 있으니 숨을 쉬지. 기가 막힌다. 여기에 대처하는 자세를 김선우 시인이 일러준다. ~~~~~~~~~~~~~~~~~~~~~~~~~~~~~~~~~~~
머리랄지 손발이랄지 아무튼 한 부분이 꽉 막혀 기가 통하지 않으니 몸 전체가 죽을 맛이다. ‘임금님 귀’는 자꾸 커져 두건으로 가릴 수 없는 지경이 된 지 오래. 지난 1년간 임금님 귀에 대고 ‘당나귀 귀’를 수술하고 함께 치료하자 설득한 이 많았으나 도무지 통하지 않는다. 몸 전체가 답답해 우는데 임금님은 사뭇 비장한 포즈로 진격 명령 중이다. 공생의 가치엔 손 놓고 시민의 입을 틀어막는 데엔 철권이 따로 없다. 바라보는 우리는 울화가 치밀어 속병이 깊어진다.
경허 스님이 동학사에 들렀을 때다. 학기를 마친 학승들에게 강주 스님이 연설하셨다. 열심히 공부해서 큰 나무, 큰 그릇이 되라고. 그리고는 경허 스님에게 한마디 청했다. 여러 번 사양한 끝에 경허 스님이 입을 열었다. 말씀 중 한 부분은 이렇다. “여러분은 스님입니다. 여러분의 삶은 중생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 사소한 개인적인 집착이나 장애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큰 나무나 큰 그릇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장애입니다. 크건 작건 그릇들은 각자 그들의 역할이 있습니다. 큰 나무는 큰 쓰임이 있고 작은 나무는 작은 쓰임이 있습니다.”
큰 나무 되기만을 바라는 마음은 ‘승자 독식’의 변형일 수도 있겠다. 우리는 작은 나무들이다. 같지만 모두 다른 존재이고, 이 작은 ‘다름’이 조화롭게 공생할 때 사회는 행복해진다. “좋고 나쁜 것은 없습니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바르게 사용하면 됩니다. 좋고 나쁜 친구를 모두 사귀십시오. 어느 것도 물리치지 마십시오. 모든 차별적인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라는 것입니다.” 경허 스님의 말씀을 듣고 그 자리에 있던 만공 스님이 제자 되기를 자청해 경허 스님을 따라나섰다는데, 나 역시 무릎을 친다. 울화에 마음밭이 상하면 우리만 손해다. 생각을 바꾸자
. 벗들에게 메일을 쓴다. 이봐, 욕하고 한탄하다 지쳐 스스로 상하지 말고 다음을 꿈꿔야지! 엠비(MB) 정권이라는 친구를 바르게 사용할 방법을 도모하자! 사실 우리는 이전에도 나쁜 친구들을 여럿 가졌다. 독재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진보를 자칭한 신자유주의 정권도 가져보았으나 그들도 결국은 나쁜 친구에 가까웠다. 나쁜 것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우리 스스로의 능력이 부재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전의 나쁜 친구들로부터 우리는 더 충분히 배워야 했다.
푸념과 신세 한탄이 반복되면 마음이 무기력해진다. 자고 일어나면 마음 상할 일이 생기지만 그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모으는 게 백번 낫다. 우리는 지금부터 4년 후를 준비하며 일상의 정치를 즐기자. 저마다의 삶을 최대한 재미나고 의미 있게 만드는 방식으로! 구태의연하고 올드한 이 정권의 수직 독재 경향에 맞서 따끈따끈한 최신식 행복 커뮤니티를 꿈꾸자. 저마다의 일상에 생기발랄한 꿈의 발전소를 세우면서.
토론을 싫어하는 정권이니 우리는 더 즐겁게 토론하자. 엠비를 찍은 주변의 평범한 보수적 경향의 시민들과 작고 아기자기한 토론을 일상적으로 즐기자.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귀 막아버리면 수구보수와 똑같아진다. 내 가족, 이웃들인 평범하고 온건한 보수의 수준을 높이고 공생의 가능성을 타진하자. 때가 되면 결국 ‘한 표’를 얻어야 하는 정치가들이 시민들을 두려워할 줄 알게 만들어야 한다.
모두 레지스탕스가 되어야 하는 시기가 왔다. 멋지지 않은가. 큰 나무만 있어서는 숲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은 소박한 주체들의 꿈, 문화적 파르티잔, 일상의 파르티잔으로!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가. 춤추면서 싸우자. 현실이 비관적일수록 의지로 낙관하자. 꿈을 잃으면 다 잃는다.
김선우 시인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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