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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함에 진저리가 나면 길을 떠나라!

- 모내기들판 강화 올레 참가자 모십니다.

봄, 걸어서 바다를 만나고

강화는 물의 섬이다. 경계를 둘러싼 바다 말고도 들판엔 저수지와 수로가 실핏줄처럼 흐른다. 물고기가 눈뜨는 아침. 물안개가 보얗게 올라오는 긴 수로를 따라 걷는다. 간간히 다리가 걸려있고 휘돌아가는 물길은 비단폭처럼 반짝인다. 논두렁을 밟으니 발바닥이 쑥 들어가며 폭신하다. 저 끝자락쯤이면 바다에 닿으리라. 잿빛 흑로가 우아하게 바람의 등을 타고 느리게 날아간다. 쭈그려 앉아서 모심기 구경을 했다. 여린 모들이 콕콕 심어지는 게 참 신기하다. 말로는 농사 쉬워 졌다고 하지만 힘든 건 허리가 휘고 쎄가 빠질듯한데, 낯선 여자는 바다로 가는 길을 묻는다.

 

“다리 건너 왼짝으로 틀면 망월리요 저쪽으로 주욱 가면 창후리 선착장이고.”

창후리는 교동 섬으로 가는 배선착장이다. 걸어서 바다를 만났다. 눈앞에는 석모도가 둥실 떠있다. 헤적이며 살금살금 들어오는 갯물에 마음이 잠겨든다. 바람과 두 팔 벌려 힘껏 포옹한다. 걸으면서 내내 그리운 이들을 떠올렸다. 같이 와서 걸으면 얼마나 좋아할까.

하늘과 땅이 눈꺼풀처럼 맞닿고 갯벌이 바닷물을 적시는 강화 벌판은 방목지다. 콘크리트 기계 문명에 짓눌린 사람들을 풀어 놓으면 어미젖을 찾는 송아지처럼 저절로 자연에 안겨 들리라. 발걸음도 가볍게 춤을 추리라. 돌이켜 보면 인생이란 한바탕 호들갑에 지나지 않은지도 모른다. 온 몸으로 걷기는 가뿐한 존재증명!

 

여름, 섬 도보 일주를 하고

8월의 햇볕은 따가웠고 달궈진 땅은 푹푹 쪄댔다. 폭염과 매연에 바람조차 숨죽인 서울을 떠나 강화도 북단을 걸었다. 돈대 위에 제비꼬리처럼 날렵하고 아리따운 연미정이 있다. 철조망 너머 바다로 흘러드는 한강 하구가 보이고 지척의 북한 땅은 민둥산이다. 한여름에도 벌건 흙빛의 헐벗은 산은 안타까웠다.

헝겊수건이 달린 밀짚모자를 쓰고, 김매는 대신 걷는 여자들. 줄줄 땀은 흐르지만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식혀주니 이래서 자연산이 최고라고 웃는다. 가요부터 동요 메들리, 새타령을 부르며 팔 휘젓고 빙그르 돌다가 마무리는 노들강변이 되어 버린다.

이 호젓하고 아름다운 길에 걷는 이가 아무도 없다. 섬전체가 유적지이고 관광지라서 전 국민이 다 아는 강화지만 나는 ‘걷기 천국’임을 덧붙이고 싶다.

햇살 양명한 들판은 너르고 풍요로워 보기만 해도 배부르지. 해수면에서 우뚝 솟은 고려산, 진강산, 봉천산, 혈구산은 기개 출중하지만 삼사백 미터 밖에 안 되어 올라가보면 북한산과 황해도 개성 송악산까지 바라보여 감탄을 금치 못한다.

 

해안선을 따라 섬 한 바퀴 걸어서 도는 데 삼사 일. 길가에서 익어가는 앵두나무와 장미덩쿨, 저수지에 비치는 산 그림자. 들판이 주는 평화로움에 고깃배가 쉬고 있는 서해 바다에 내려앉는 저녁노을, 섬 일주 걷기는 완결의 뿌듯함과 기쁨이 있다.

청동기 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 역사가 켜켜이 쌓이고 분단의 현실까지 사색할 수 있는 강화 땅을 꼭 아이들이 걸었으면 좋겠다. 자동차를 버리고 몸의 속도로 생각하며 천천히.

 

가을, 산에 올라 추수들판을 보고

뜨겁고 강렬한 것들이 식어갈 때 마음은 해가 들지 않는 숲길 같았다. 일터에서는 강박적으로 명랑 활발하다가도 퇴근길이면 마법이 풀렸다. 황혼녘에 정거장에 서있으면 눈시울이 붉어졌다. 쑥대밭처럼 억세고 어수선한 삶. 견고하다고 믿었던 시간들은 썰물처럼 물러나고 이쪽에선 서글픔이 저 너머에선 그리움이 불쑥 솟구친다. 삶의 잔망스러움, 비겁함에 진저리가 나면 목줄을 풀고 자연으로 몸을 던져야 한다. 산과 들, 바다는 자연결핍증을 회복시키는 충전소다.

 

강화읍을 지나 서쪽으로 이어지는 48번 국도변, 하점면 사무소에서 봉천산을 오른다. 소나무와 쑥부쟁이가 반기는 숲을 지나면 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 약수터. 밧줄을 따라 왼쪽 깔닥고개를 잠시 오르면 이윽고 훤칠한 바위 능선. 황금물결을 쓸고 온 바람은 서늘하고 시원하다. 산의 어깨에 앉으면 서쪽 수로 끝 바다에 석모도와 오른쪽에 교동이 보인다. 조금 더 오르면 정상에는 천제를 지내던 돌로 쌓은 봉천대가 우뚝하다. 360도 파노라마로 보이는 경치에 탄성이 나온다. 북쪽 바다건너 송악산의 뾰족한 봉우리가 선명하고 동쪽 김포의 문수산 넘어 북한산이 뚜렷하다. 반대 방향으로 북쪽 계곡을 내려가면 개성에서 옮겨 왔다는 고려 오층석탑과 마애석불을 만난다. 양지바르고 바람이 비껴가서 조용하다. 잔디밭에 적막감을 동무삼아 앉아 있으면 쫓기듯 질주하던 마음도 덩달아 착해진다. 눈뜨면 이어질 삶의 길, 꿈꾸듯 걸어가라, 내게 이른다.

 

겨울, 칼바람 속에 얼어가며 걷고

추수가 끝난 빈들이 황량하다. 바람소리만 아니면 온통 침묵이다. 쨍하니 시퍼런 하늘 구만리에서 발진한 기러기 편대, 철조망을 사뿐히 넘어 논과 바다 경계를 오가는 철새무리. 머릿속에 자동항법장치가 있다지. 주어진 정보에 아는 길이 아니면 떠나지 않으려 드는 인간들. 익숙한 것과 결별하고 낯선 곳에서 헤매지 않고선 새 경계, 또 다른 자신을 어찌 만나랴.

혹한의 강화 들판을 칼바람 속에 같이 걸은 친구가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이다. 우리는 줄 끊어진 연처럼 펄럭거리며 걸었다. 봄에는 진달래를 따서 화전을 부쳐 동동주를 마시며 풍류여아의 삶을 노래했다. 가을 휘영청 달밤이 아쉬워서 뽀얀 밤길을 걸어 달이 지는 쪽으로 걷다보면 동이 터왔다. 겨울. 컵라면 국물이라도 얻어먹을 가게조차 없는 빈 들판을 동계훈련처럼 시퍼렇게 얼어가며 걷다가 버스기사에게 구조되기도 했다.

걷기 공부를 삼년쯤 했나? 서명숙은 잘 나가던 직업을 때려치우고 산티아고 길을 걷고 돌아와 고향인 제주로 내려갔다. 도로는 자동차가 차지하고 느린 걸음은 경멸의 대상이 된 지금, 그녀의 헌신으로 아름답고 평화로운 섬에 걷는 ‘제주올레’길이 벌써 220km나 만들어졌다.

서명숙의 아름다운 배신으로 나동그라진 호미 신세가 된 나. ‘그날의 피던 꽃은 잊어 버려요오~’라는 그녀의 애창곡을 흥얼거리며 나 홀로 ‘강화올레’를 여전히 걷고 있다. 너무 고달픈 길을 가는가 싶어 가슴도 아프고 그리워도 하면서.

 

다시 봄. 강화올레 리본 달고

“강화 올레 리본 좀 다시지. 사람들이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고 민원이 들어왔어“

서명숙 이사장의 퉁박이다.

“으응. 강화올레는 불친절한 게 컨셉이야.”

“그러지 말고 올라가는 대로 리본 좀 다시우.”

할 수 없이 제주올레와 같은 노랑 파랑 리본을 달았다. 마땅히 달 곳도 없는 길도 있고 전봇대도 생각보다 높아서 낑낑거렸다. 이해해 주시라.

내 생각은 이렇다. 땅덩이가 크고 큰 맘 먹고 비행기 타고 가는 제주도는 정보가 필수다. 하지만 교통 편리하고 3-4일이면 한 바퀴 돌 수 있는 강화 섬은 누구나 올레를 만들 수 있다. 본래 땅에는 길이 없다. 길이란 발로 만들어지는 것. 낯선 곳에서 오감으로 나의 올레를 찾다보면 어느 순간 몸 떨리는 환희심을 느끼리라.

다시 봄이 오고 있다. 봄꽃 한 무더기에 담장을 뛰어 넘어 강화올레로 오사이다~~

이유명호/ 한의사,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자궁> 저자. 강화올레

 

<강화올레, 봉천산과 창후리 수로>

하점면의 봉천산. 산행 후 강화평야의 너른 들길 수로를 따라 걸어서 바다를 만납니다. 서쪽 석모도 방향으로 수로의 생성과 소멸을 보며 하점교 삼거천 창후교 지나 창후리 포구와 낙조 포인트인 무태돈대가 종점. 산행 두 시간, 수로길 두 시간 정도. 총 13Km 정도

<모내기 들판 걷기 참가자 모집>

수로에 물이 차오르고 논에 새파란 모가 자라는 들판을 걸어서 바다를 만납니다.

일정: 5월 31일 오전 7시 50분 서울 합정역 출발

* 오전 봉천산(300미터) 등산, 김밥 점심 * 오후 수로 들판~바다길

* 저녁 오마이스쿨 백반과 곡주로 뒷풀이 후 서울귀경 7시 예정

참가비 : 3만원 문의 : 032-937-7430 (오마이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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