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넋빠졌던 년들

지금 넋빠지고 있는 뇬들

앞으로 넋빠질 년들에게

 

박수를 짝짝짝 치며

주말 잘보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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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열마릐 개..이 넋빠진 년들아~~(오정희 샘)

2009.06.20 10:37

약초궁주 조회 수:2045 추천:233

 

 

열마리의 개

 

계속합니다.~~~

 

흰개가 이틀째 나타나지 않자 나는 수색에 나섰다. 논 건너편에 둥지를 틀었다면 논두렁이길이 물에 잠겨 건너올 수 없을 터였다. 어딘가 고립되어 새끼를 낳고 꼬박 굶고 있을 개를 생각하면 애가 탔다. 연일 그치지 않고 내리는 비에 벼포기가 다 잠긴 논은 저수지가 되어 있었다.

 

 나는 바지를 둥둥 걷어올리고, 메리 포핀스처럼 우산을 높이 쳐들고 개가 사라지던 방향을 가늠하며 물을 건넜다. 짐작대로 흰개는 그들이 전에 사던 하수구 위쪽의 옹색한 흙바닥에서 갓낳은 다섯마리의 새끼들을 품고 웅크리고 있었다. 해묵은 개복숭아나무 밑이었다. 나뭇잎들이 우거졌다고는 해도 사나운 비바람을 온전히 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미는 흠뻑젖은 물걸레꼴이 되어 참으로 난처하고 난감해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고물대는 강아지들은 기를 쓰고 허기진 어미의 젖을 파고들었다.

 

  큼직한 플라스틱 함지와 두 개의 우산으로 급한대로 비가림을 해주고 날마다 뱀과 개구리의 위험에 떨면서 밥바구니를 들고 물을 건너갔다. 폭우 속에 온몸을 적시며 돌진하는 일, 아주 단순한 목적성은 스스로를 강하고 용감한 인간으로 느끼게 하기도 했다.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무논을 사이에 두고 이켠저켠에서 새끼를 품고 있는 개들 사이를 오가며 도도한 연설을 늘어놓았다.

 

"이년들아, 이 넋빠진 년들아, 도대체 무슨 짓들을 한 거냐? 지 한몸 건사도 어렵거늘 집도 먹을 것도 없는 데서 어떻게 새끼를 낳아 기르겠다는 거냐? 사는 일이 그렇게 만만한 줄 알아? 심란허냐? 그렇겠지. 꽃피는 봄날의 사랑이 이런 결과를 가져올지 몰랐겠지"

 

  내말을 듣는둥마는둥 눈빛이 한결 순하고 몸가짐이 의젓해진 어미개들은 새끼들을 핥아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나는 그 작고 무력하기 짝이 없는 두 어미들과 오로지 그들의 모성본능에 의존하고 있는 여덟마리 눈먼 강아지들 앞에 놓인 고단한 삶을 걱정하는데 새끼를 끼고 젖을 빨리는 어미의 눈빛은 마냥 대견하고 행복하게만 보였다. 이것으로 족하지 않은가, 내일의 일은 내일에 맡길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였다.

 

 

  긴 장마를 견디고 여덟마리의 새끼들은 살아남았다. 때가 되니 눈이 뜨이고 때가 되니 아장걸음이 깡총걸음이 되었다. 자꾸 잡초 우거진 풀섶으로 흩어지는 새끼들을 모아들이고 감시하노라 어미들은 불안하고 분주해졌다. 세상의 모든 것이 신기해서 물고 뜯고 빨고 한덩어리로 뒹굴다가 어미품을 파고드는 강아지들을 보면서 왜 모든 좋은 예술작품 속에는 비밀처럼 동화가 들어 있는 것인지, 왜 우리의 유년이 행복해야만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행여 남이 알세라 밤이슬 맞으며 밥을 날랐건만 들개들이 새끼를 낳았다는 소문이 퍼진 모양이었다. 줄곧 개들과 나를 예의주시하며 눈살을 꽃꽃이 세우는 세차장의 젊은이에게 '젖뗄 때까지만'이라는 단서로 약속했던 것이 빌미가 되었던 것 같았다. 근처 구두수선소 아저씨는 자신이 개를 좋아하니 열 마리의 개를 모두 자신에게 달라고 했다.

 어미들은 잡기 어려울 테니 아줌마가 붙잡아달라고, 자기의 농장에서 기르겠노라고 했지만 어미들은 잡아먹고 새끼들은 푼돈에 팔아 담배값이나 하려는 속셈이 읽혔다. 젖떼기 전에 롬겨가면 면역력이 없어 죽어버린다고, 어미젖을 떼려면 아아직 멀었다고, 강아지들이 없어지면 아저씨가 가져간 것으로 알겠다고 서툰 협박으로 막았지만 마음이 무겁고 불안해졌다.

 

  그 개들로 인해 나는 여지껏 써왔던 소설들과는 달리 처음으로 해피앤딩의 결말을 맺게 되었다. 춘천 근교 금병산 자락에서 과수원을 하는 시인 김희목 선생께서 개들을 맡아주겠노라 하신 것이다. 먹이와 잠자리는 충분히 마련해주고 자유롭게 살도록 풀어 기르지만 대신 너르고 깊은 산 곳곳, 사람들이 쳐놓은 올무에 걸려 죽거나 다치는 위험은 있으리라 하였다.

 

  지난 봄과 여름내 나는 그 개들로 인해 분주했다. 근심하고 가슴 아팠고 경이로웠고 슬펐다. 하지만 그 슬픔이 나를 일시적이나마 정화시켰음, 일상을 작은 축제로 만드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만들었음을 감히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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