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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에게 듣는 산 이야기] 이유명호 페미니스트 한의사
“산에 가는 건 내가 개미처럼 보이라고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뭐냐고 물었다. 그녀는 주저 없이 “사랑”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남자든 여자든 모든 사람은 사랑받기 위해서 산다”고. ‘사랑이 뭘까’라는 생각이 문득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다 알 것 같지만 무궁무진한 깊이를 가진 사랑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싶다. 그녀가 말하는 사랑이 뭔지, 그녀는 어떻게 사랑을 보여주고 있는지 그녀의 삶을 통해서 살펴보자.

그녀는 꽁지머리 페미니스트 한의사 이유명호(55)다. 그녀를 지칭하는 수식어는 수없이 많다. 하지만 여기선 꼭 필요한 수식어 3개만 붙였다. 꽁지머리는 그녀의 마스코트가 된 지 오래다. 여성계에선 꽁지머리하면 바로 이유명호를 떠올린다. 그녀의 외면적 특징이다. 꽁지머리는 그녀를 구속하면서 동시에 그녀를 자유롭게 만드는 힘이다. 페미니스트는 그녀의 이름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이름이 넉자인 여성은 십중팔구 페미니스트다. 그녀도 예외는 아니다. 그녀의 내면적 특징을 잘 나타내주는 단어다. 한의사는 대학 졸업 후 가진 그녀의 직업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자궁」이란 책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그녀가, 공중파 방송에서 자궁이나 난소니 여성의 몸과 성에 대한 화끈한 강의로 이름을 날린 그녀가 왜 남성계에선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을까 궁금했다. 웬만한 페미니스트는 세상과 싸움의 방법을 터득한 후 그들의 활동에 걸맞게 이름을 크게 날리고 있는 게 현실인데 말이다.


그녀는 그녀만의 삶의 자세를 갖고 있다. 그녀는 사실 페미니스트라기보다는 박애주의자이며 평등주의자라고 부르는 게 더 타당할지 모른다. 우선 그녀가 속한 단체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2003년 안티 미스코리아, 안티 포르노 대회 등을 주최하면서 한국 여성들의 다양한 문화활동을 이끌고 있는 이프토피아(iftopia) 이사, 한국 이주여성 인권센터 이사, 한국여성 장애인연합 고문 등을 맡고 있다. 모두 다 창립 때부터 후원하며 활동해 온 단체들이다. 그녀가 중요하게 여기며 소속감을 가지는 단체들이다. 이주여성, 장애인, 가난한 사람 등 소수면서 힘없고 외로운 여성들을 있는 힘을 다해 돕는 그녀다. 이들이 크고 작은 차별 속에 좌절하고 고통을 당하는 건 옳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나는 이들은 물론 이 땅의 모든 이들이 존중받고 배려하며, 서로에게 무례하지 않은 건강한 사회를 꿈꾸는 사람입니다.”


그녀의 나직한 말이다. 소박한 꿈이기도 하다. 그 외에 서울여한의사회 회장, 21세기여성포럼 공동대표를 맡았었고, 해외의료봉사단, 성폭력상담소, 막달레나의 집, 월드비전 등도 힘닿는 대로 조금씩 후원하고 있으며, 서울시 여성학 강사와 성교육, 건강교육가로 활동 중이다. 책을 세 권이나 낸 작가로도 이미 등록했다. 지방자치단체, 회사, 단체, 대학교 등 전국으로 강의를 다닌다. 여러 방송에도 출연한 지 오래됐다.


박애주의자이며 평등주의자


특히 이프토피아에서 주최한 ‘성 상품화 반대’인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는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켜 미스코리아대회보다 더 사회적 관심을 끌고, 중계방송을 막아냈다. 그녀는 안티페스티벌과 대한민국 여성축제에 연속으로 출전했다. 최고령자로 출전하니 대상도 주어졌다. 흔히 주책이라고들 했지만 그녀는 내숭을 벗어던지고 목소리가 아닌 몸으로, 행동으로 보여줬다. 그게 바로 페미니스트 이유명호가 가진 힘이다.


▲ 이유명호 한의사가 지난 5월1일 경희궁 뒤 숲이 우거진 길에서 신록을 쳐다보면 활짝 웃고 있다.

그녀의 모습에서 전혀 투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연약한 모습에 남성들로 하여금 보호본능을 일으키게 한다. 그녀는 절대 목소리 높여 성별을 분리하고 남성을 궁지로 몰아가지 않는다. 남자도 여자도 함께 편안하게 잘 사는 것, 서로 사랑하며 사는 세상을 만드는 꿈을 가진 페미니스트다. 하지만 이젠 꿈이 아니다. 가까운 미래에 와있는 세상이다. 그녀들이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이고, 힘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에 거부감을 가진 남성들조차 그녀와 만나 대화하고, 강의를 듣고 보면 설득당하기 일쑤다. 목소리가 아닌 논리로, 직설적인 듯하면서도 의미가 있게 생물학적으로 설명하기 때문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녀만이 터득한 ‘싸움의 정석’인지 모른다.


그녀는 그녀의 이름에서 보듯이 97년부터 부모성 함께 쓰기와 호주제 폐지운동을 벌였다. 사무실이 없어 연락처가 없을 때, 문의전화를 하면 바로 그녀의 병원으로 연결됐었다. 그녀는 이 시민 모임의 주방장 역할을 톡톡히 했다. 서명 받으러 다닐 때 김밥, 차 등을 부지런히 날랐다. 그 자신도 국회 앞에서 일인 시위를 했다. 이들의 활약으로 2005년 3월 호주제 폐지 민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 부분에 대한 그녀의 주장은 분명했다.


▲ 경희궁 잔디밭에서 길을 가다 돌아보는 이유명호 한의사.

“여자는 생명창조를 위임받은 존재인데, 가부장제 하에서의 여자는 열등한 존재, 잊혀진 존재로 취급된다. 사랑의 열매로 아기는 태어난다. 엄마의 반쪽 씨에 남자의 반쪽 씨를 보태어 열 달간 엄마의 피로써 완전한 생명으로 자식이 태어난다. 그 순간 제도는 남편의 아이로 만들어버린다. 엄마는 씨받이에, 애보는 역할로 비하된다. 가부장적 사회가 엄마의 역할을 잊혀지게 만든다. 의학도 남성과학의 시선으로 여성의 몸을 다룬다. 탄생의 시작인 수정도 달리기 잘하는 정자가 조신하게 기다리는 난자를 뚫고 들어간다는 힘의 논리로 가르친다. 사실 난자의 신호를 받고 헤엄쳐 올라간 정자가 맞닥뜨린 난자는 거대하다. 천 배나 크고 십만 배나 무겁다. 이를 남성의 시각으로 해석하니 불평등의 기원이 된다. 이런 오해를 재미있게 풀어나가는 게 내 역할이다.”


산이 항상 건네는 말 ‘너, 이제 왔구나’


실제로 그녀는 수많은 환자들과 많은 소중한 경험을 했다. 환자들의 질염이 자꾸 재발돼서 남자 친구 의사한테 묘수가 없냐고 물었다. 뒷물이나 잘 하라고 했다. 오줌과 정액이 한 통로로 쓰는 음경과 달리 질은 요도와 엄연히 분리되어 있고, 생태 균형이 맞으면 염증이 생길 우려가 적어서 입속보다 깨끗한데 불결하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모든 약품도 표준모델은 남성이고, 임상실험도 남성이다. 세상의 절반인 여자는 고려대상에 들어있지 않고 차별받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인본주의적 페미니즘을 더욱 강화시킨 사건이기도 했다. 그녀는 말했다.
“과학도, 생물학도, 의학도 남자편이더라. 여성 몸의 진실과 가치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세상에 얘기해야만 했다.”


그녀의 ‘자궁 햇볕정책운동’이 본격 시작됐다. 그래서 나온 책이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자궁」이다. 중국, 대만에서 이미 출간됐고, 곧 일본과 태국에서도 출판될 예정이다.


그녀가 왜 이런 일에 관심을 가지며, 하게 됐는지 궁금했다. 그녀의 사람에 대한 사랑이 그대로 묻어나왔다. “배운 사람이, 여유 있는 사람이, 문제제기를 먼저 한 사람이 책임지고 해결해야 되는 일 아닌가.”
그녀는 이러한 사랑과 평등을 어떻게 지니게 됐을까? 인간은 누구나 어릴 때 성장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다. 그녀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를 설명할 핵심 열쇠는 그녀의 아버지가 쥐고 있었다. 그녀가 어릴 때 아버지에게서 받은 영향이 성인 이유명호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군인이었다. 춘천사범을 졸업하고 영어교사로 있다 통역장교로 군에 입대했다. 좋은 보직만 있던 잘 나가는 군인이었다. 군인은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의 상징이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전혀 달랐다. 외국 대통령이 오면 학생들이 동원되어 환영 태극기를 흔드는 자리에 못 가게 했다. 학생들이 동원돼선 안 된다는 가치를 갖고 계셨다. 뿐만 아니라 어릴 적부터 성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 손잡고 19세 이상 영화를 보곤 했다. 당시 본 영화가 ‘내시’, ‘현해탄은 살아있다’ 등이었다. 버스 등 공중장소에서 옆자리에 앉을 땐 꼭 ‘실례합니다’라고 인사하라고 가르쳤다. 남녀 차별이 없었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배웠다. 싫은 건 싫다고 말할 수 있는 가치와 용기를 심어주셨다. 그 힘이 지금의 이유명호를 있게 했다.


▲ 1. 강화도 걷기를하다 무태돈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2. 경기여고 동창회에서 여고 교복을 입고 사회를 보고 있다. 3. 대한민국 여성축제에서 심청 옷차림으로 선서를 하고 있다. 4. 월출산 구정봉 선녀탕에서 나무꾼을 기다렸다는 이유명호. 5. 지난 5월2일 강화도 순환로를 일부 돌고 나서 무태돈대 위에서 석양을 배경으로 기념촬영 했다.

그녀는 많은 운동(?)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경기여고 시절 땐 몸이 약해 운동으로 체력을 키울 심산이었다. 양궁을 그 때 배웠다. 고교 대표로 출전한 양궁은 전국체전에서 대표 선서를 하기도 했다. 여고 졸업 이후엔 사격을 배웠다. 힘을 길러야 한다는 신념에서 비롯된 운동이다. 요즘은 다른 운동을 하고 있다. 여성운동 외 강화 순례길 만드는 걷기운동과 평화의 길 만들기 등이다.


그녀가 걷기 운동을 하기 전에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도 다녀오는 등 많은 산을 다녔다. 산은 그녀의 외할머니부터 시작해서 그녀의 어머니에게로, 그녀로 3대째 이어온 유전이다. 외할머니는 환갑부터 계를 조직해 전국으로 다니기 시작하셨다. 관광계 효시격인 ‘마포관광계’ 계주가 바로 그녀의 외할머니셨다. 올해 77세인 그녀의 어머니도 쉰을 넘어서면서부터 지리산과 설악산 종주 등으로 전국의 웬만한 산은 다 다녔다. 외국의 많은 산도 올랐다. 환갑 때 대청봉을 3회 오르시고 월간 山 감동산행기에 투고한 장본인이다. 그녀가 말했다. “우리 집은 지금 당장 떠날 수 있도록 누군가는 항상 배낭이나 여행 보따리를 싸고 있다.”


그녀는 그 내력을 이어받아 한의사가 되지 않았다면 아마 관광 가이드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녀도 무박, 강화도 종주 걷기 등 산행과 걷기 경력으로 치면 어느 누구 못지않다. 길게 걷고 싶어 한의원 땡땡이 치고 3일 동안 강화도 100㎞를 거뜬히 걸은 사람이다. 많이 걸어 발이 아파 신발에 생리대 깔고 걷기도 해봤고, 번번이 옆길로 새서 수시로 헤매곤 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주변에서 “제발 정상적으로 좀 살아라”고 농담으로 던지곤 했다고 한다.


파브르 곤충기와 시튼의 동물기를 읽으며 꿈을 키웠던 생물소녀가 여고 입학해선 동양철학에 심취해서 시경을 읽으며 불교철학을 전공할까로 고민했던 적도 있었다. 지금은 인간과  자연을 모두 사랑하는 운동권(?) 한의사가 된 이유명호. 그녀는 산에 가면 자신이 개미처럼 작게 보여서 좋다고 한다. 산에서 바라보는 인간의 집들이 성냥갑처럼 느껴지는 그 시선을, 그 감상을 오래 간직하고 싶단다.


인간들의 많은 일탈행위와 중독 행위는 자연, 산 결핍증에 걸렸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녀는 역으로 자연과 산에 중독돼 있다. 이 중독은 아무리 지나쳐도 무리가 없다는 것을 그녀는 안다. 토요일 오전 병원을 마치면 어김없이 짐을 싼다. 전에는 산과 들, 내키는 대로 다녔지만 요즘은 주로 강화 섬의 산과 들길, 갯벌에 푹 빠져 산다. 조용한 산은 가만히 기다리다 말을 건넨다. ‘너, 이제 왔구나’라고. 산은 가만 있지만 인간이 찾으면 언제나 고요하게 받아들인다. 그녀는 안다. 그게 바로 자연이 인간에 주는 사랑이라고.


/ 박정원 차장대우 jungwon@chosun.com
  사진 허재성 기자 heophot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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