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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섬 한바퀴- 월요일 마지막 코스 끝

2008.10.14 17:32

yakchobat 조회 수:2319 추천:171



 

월요일...모녀가 걸었다.


한방에 낑겨 자니 잠버릇이 제각각. 가르릉...쿠루릉...커억컥..고단하니 잘들 잔다. 새벽 3시에 잠이 깨어 날이 밝기를 기다린다. 날이 밝자 다섯 시에 혼자 살금살금 빠져 나왔다. 문가에는 팬션 주인이 길 떠나면 먹으라고 달걀을 삶아서 얌전히 놓았다. 달걀 한 개를 집어 들고 새벽 상큼한 공기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장화리에서 동막 해수욕장을 거쳐 전등사까지 가다보면 다들 천천히 일어날테고 나중에 합류하면 되니까.

황진이처럼 겨울밤 한허리를 베어내듯이 시간을 내서 온전히 걸을 수 있는 사람 많지 않다.

 

우선 형편이 안받쳐주고. 엄두가 안 나고 걸을 필요도 못 느낀다. 뭐하러 그딴 짓을 하나도 싶고. 직장 일에, 집안일에,  제사에, 조카 결혼식에...강아지가 걱정 되서...밀린 일감에...밥벌이에 시간 못 내고...일상은 힘이 쎄서 우릴 잡고 놔주지 않는다. 그렇다 해도 단 며칠만이라도 오감이 깨어 있는 채 온전하게 내 시간으로 살 권리와 의무가 있지 않은가.


긴 오르막 길, 하얀 찔레꽃 청순한 향기가 새벽 공기 속에 엷게 퍼져있다. 상큼하다. 반대편  쪽에서 고개를 오르던 자전거를 탄 젊은 남자가 자가 말을 시킨다. 이른 아침 복장도 어수선한 여자에게.

“어디 가요?” “동막해수욕장 가요.”

“자전거 타세요” “아니예요. 걸을 꺼예요.”

“거기 멀어요, 왜 걸어요? ” “그냥 걸어요.”

“하느님이 걸으라고 시켰어요?”

썰렁한 물음에 할말이 없다. 안탄다고 했더니만 그냥 가버린다. 짧은 순간, 자전거 타고 저 남자의 허리를 꼭 끌어안고 달리면 재수 좋은 거 아닌가. 고개를 젓고 다시 걷다보니 바로 밀려드는 후회. 혼잣말로 나오는 기도.ㅋㅋ

하느님! 그제는 커피배달 아저씨를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실 우리가 젊은 남자라고 꼬집어서 기도를 안해서 그러신줄 다 알아유. 오늘은 신경써서 자전거와 젊은 남자를 함께 보내주셨는데 ....미련한 중생이 굴러 들어온 복을 발로 찼구만유~아까버라. 지나간 자전거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하느님 다시 자전거 한대만 보내 주시믄 안될까요?


오토바이 소리 요란해서 보면 여성 농민이 떡하니 타고 온다. 멋지다. 길가 밭에 배낭이 떨어져 있길래 임자없는 건 줄알고 휘휘 둘러보니 저 앞에 김매는 아주머니. 수건 물병 간식이든 일터용 배낭인 것. 도시여자의 무식함이라니. 농민이 남자라는 편견을 버리자구.

 

호젓하게 걸어왔다. 전등사 근처의 나물 집, 널찍한 평상에 자릴 잡고 일행을 불러낸다. 걸어서 4시간인데 차로 오면 15분이다. 버스비로는 900원어치, 택시비로 따지면 한 만원 쯤 될까. 내가 산보 나간 줄 알고 느긋하게 아침잠을 즐긴 조직들이 합류하여 ‘걸은 자’ 에게 밥보시를 해준다. 때죽나무와 아카시아 흰꽃이 우수수 날리는 평상에서 동동주 한잔에 도토리 묵사발에 나물밥 참기름 넣고 썩썩 비벼 넣으니 꿀맛이다.


점심을 먹고 나자 들장미파는 다 떠나고 딸아이가 합류했다. 한낮에는 기온이 벌써 30도로 치솟는다. 모녀가 헝겊인형처럼 널 부러져 늘어지게 한잠 잔 뒤 광성보로 갔다. 전등사 앞 온수리 84번 도로는 너무 혼잡하여 걸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 길은 굉성보에서 해안도로를 걸어 <강화역사관>까지다. 그나마 자전거 도로가 있지만 그늘 없이 땡볕이다. 결국 길가 트럭에서 냉커피 한잔을 나눠 마셨다. 3일 동안 마신 커피 총량이 딱 한잔이다.

 

나무그늘에 자리 잡고 소주파티를 벌이는 일행들이 나그네를 불러 세운다.

‘아줌마 캔 게 뭐요?“ 엄마 핫바지에 허름한 배낭은 나물장수처럼 보인다. ’바늘특공대‘가 만들어 준 모자가 너무 더워서 밥집에서 뚜껑을 잘라내고 시침질을 했으니 허수아비 모자다. 자꾸 소주나 한잔하고 가라고 붙잡는 것을 주저앉으면 맘 약해 질까봐 지나쳤다. 산모롱이를 돌고 돌아도 아득해 보이는 강화다리. 한 발짝씩 걷다보면 그사이에  다리가 이사 가지 않는 한 결국 닿게 마련. 넘어가는 석양에 내 얼굴도 불타오른다.


딸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보니 영락없는 우리 엄마 자세. 그 안에 마포를 주름잡던 관광계 오야 할머니의 모습도 있지 않을까. 오리표 운동화에 몸뻬 바지를 입고 전국구로 놀러 다니셨던 그분의 핏줄이 어디 갔겠냐 내속에 흐르겠지. 마지막 날, 딸과 같이 걸은 건 오래 기억될 모녀추억이다. 오늘날 걷기 싫어해도 내 나이되면 저 역시 길로 나서겠지. 유전자의 꼬드김이 얼마나 무서운데. ㅎㅎ

 

걷다보면 아는 노래란 노래는 죄다 흥얼거리게 된다. 테이프 늘어지듯이 부르고 또 부른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오겠네 ~ 하하하하 웃으면 그 소리 들리겠네~ 달나라까지~앞으로~ 앞으로~

인간이 한평생 걷는 거리는 지구를 돌고도 남는다고 하니 걸어서 온 세상 사람들 다 만나보고 싶다고 소리 높여 부른다.


나팔꽃에 귀 대보고, 구름 이름 부르며, 별자리도 알아 맞추던, 나무 뒤에 숨던, 어스름 저녁에 술래잡기 하던 풍경은 지워지고  도시생활의 소란함과 분주함이 자리 잡은 인생....

관계에 집착하는 내가 보인다. 보여. 속에 두려움과 외로움, 고통의 면적을 숨기려 잔머리를 굴린다. 행복하지 않은 것도 죄, 사랑하지 않는 건 더욱 큰 죄. 미련과 아둔함으로 한 세월 가는데 맞바람에 따귀를 몇 대 얻어맞았다. 산들 바람 타고 너풀너풀 날개 짓도 했다. 백로 따라 외발로 서보기도 하고 비싼 밥?먹고 헛기운도 뺐다. 그래 철 안 나도 좋다. 씩씩하게만 살아다오. 명호야.

 

단 사흘간의 출가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니 한 밤. 온몸이 제각각 다리 따로 허리 삐그덕 관절 시큰 아우성쳐서 오히려 깊은 잠이 안 든다. 한 100km는 걸었을까. 날씨를 베풀어준 하늘과 땅, 바다 산 반달 구름까지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오래된 몸도 고맙다. 눈을 감으니 선하게 떠오르는 풍경 사람들. 벌써 그리워진다. 나 제대로 바람 들은갑따. 민들레 홀씨마냥 두둥실 가벼워졌으니~.

 

벌써 일년전 일이다.  이 글은 몸을 살리는 다이어트 여행 후기에 실렸다.

아무나 누구라도 맘대로 어디든지 걸으라고 꼬드기기 위해서..

 

~~사진은 마지막 종점 강화역사관에 도착해서.

 햇볕에 그을고 석양주를 마신듯 붉어진 얼굴이다. 후련한 심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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