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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삶이 보이는 창에

썼던 글이 튀어 나왔어.

 

강화 올레--지금은 강화나들길로

만들어 졌는데...내가 원조? 라고나 할까 ㅋㅋ

 

강화들판을 명숙과 걷던 것이 십삼년전.

 

이제 서명숙은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이 되심

나는 늘 거들기 1인.

시작은 미미하나 끝은 창대함을 직접 목격한 증인 1인

 

 

강화올레, 봄 여름 가을 겨울

이유명호, 한의사,

 

 

강화는 물의 섬이다. 경계를 둘러싼 바다 말고도 들판엔 저수지와 수로가 실핏줄처럼 흐른다. 물고기가 눈뜨는 아침. 낚시를 하고 싶어 하는 아이랑 얼음이 풀린 수로에 닿았다. 물안개가 보얗게 올라온다. 몽환적이다. 부지런한 농부는 모내기 준비에 한창인데 들판엔 하얀 백로가 유유히 날개 짓을 한다. 아이 옆에 김밥과 물을 놔두고 난 홀로 들판 길로 나선다.

 

긴 수로를 따라 논길 사이를 걷는다. 간간히 다리가 걸려있고 휘돌아가는 물길은 비단폭처럼 반짝인다. 논두렁을 밟으니 발바닥이 쑥 들어가며 폭신하다. 저 끝자락 쯤이면 바다에 닿으리라. 가까지 다가서니 초록 물결, 청보리밭. 줄기를 꺾어 까끌한 털들을 얼굴에 대본다. 짙은 잿빛 흑로가 우아하게 바람의 등을 타고 느리게 날아간다. 쭈그려 앉아서 모심기 구경을 했다. 여린 모들이 콕콕 심어지는 게 참 신기하다. 말로는 농사 쉬워 졌다고 하지만 힘든건 허리가 휘고 쎄가 빠질듯한데...까마귀 같은 여자는 바다로 가는 길을 묻는다.

“저쪽으로 주욱 가면 창후리 선착장이고 다리건너 왼짝으로 틀면 망월리요”

 

망월리라...달구경에 좋은 마을에 창후리는 교동 섬으로 가는 배선착장이다.

한발을 앞에 놓으면 발자욱은 지워지고 길은 잊혀진다. 뒤돌아보니 파르스름한 논사이로 걸어온 길이 하얀 가르마처럼 섹쉬하다. 점점 가까와지는 바다, 앞에는 석모도가 떠있다. 갈매기가 끼룩끼룩 신나게 난다. 걸어서 바다를 만났다. 헤적이며 살금살금 들어오는 갯물에 마음이 잠겨든다. 바람과 두팔 벌려 힘껏 포옹한다.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걸으면서 내내 그리운 이들을 떠올렸다. 같이 와서 걸으면 얼마나 좋아할까.

하늘과 땅이 눈꺼풀처럼 맞닿고 갯벌이 바닷물을 적시는 강화 벌판은 방목지다. 콘크리트 기계 문명의 차꼬와 수갑을 찬 사람들을 여기에 놓아주면 어미젖을 찾는 아이처럼 저절로 자연에 안겨 들게 되리라. 발걸음도 가볍게 춤을 추리라. 속박의 상처들은 메워지리라.

돌이켜 보면 인생이란 한바탕 호들갑에 지나지 않은지도 모른다. 나이테에 온 몸으로 걷기라는 존재증명을 가뿐하게 새긴다.

 

 

여름.

 

8월의 햇볕은 따가웠고 달궈진 땅은 푹푹 쪄댔다. 폭염과 매연에 바람조차 숨죽인 서울을 떠나 강화도 북단을 걸었다. 돈대위에 제비꼬리처럼 날렵하고 아리따운 연미정이 있다. 철조망 너머 바다로 흘러드는 한강 하구가 보이고 지척의 북한 땅은 민둥산이다. 한여름에도 벌건 흙빛의 헐벗은 산은 안타까웠다.

헝겊수건이 달린 밀짚모자를 쓰고 김매는 대신 걷는 여자들. 줄줄 땀은 흐르지만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식혀주니 이래서 자연산이 최고라고 웃는다. 노래를 부른다. 가요부터 동요 메들리를 부르다가 제대로 아는 게 없어서 끝은 흐지부지. 새타령을 부르며 팔 휘젓고 빙그르 돌다가 마무리는 노들강변이 되 버린다. 어쩌다 지나가는 차는 있지만 길가엔 걷는 이가 아무도 없다. 이 호젓하고 아름다운 길에.

강화는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모두 안다. 마니산 참성단, 고인돌, 전등사와 석모도와 유적과관광지로 유명하니까. 여기에 나는 ‘걷기 천국’이 강화라고 생각한다.

햇살 양명한 들판은 너르고 풍요로워 보기만 해도 배부르지. 해수면에서 우뚝 솟은 고려산 진강산 봉천산 혈구산은 기개 출중하고 의젓함에도 삼사백 미터 밖에 안 된다. 산이라면 질색하는 이들도 올라가보면 북한산과 황해도 개성 송악산까지 바라보이는 특 트인 경치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해안선을 따라 섬 한 바퀴 걸어서 도는 데 삼사 일. 북어껍질처럼 마른 뱀허물, 찔레꽃 향기. 새빨간 장미넝쿨. 길가에서 익어가는 앵두나무. 벌새의 날개 짓, 저수지에 비치는 산 그림자. 고깃배가 쉬고 있는 해안가의 잔잔한 풍광.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논밭이 안겨주는 배부른 느낌. 졸다 깨서 낯선 이에게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 키 큰 수숫대의 도열, 지나는 과객에게 건네는 커피 한잔 시원한 냉수의 인심. 서해 바다에 내려앉는 저녁노을,..섬 일주 걷기는 완결의 뿌듯함과 기쁨이 있다.

청동기 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 역사가 켜켜이 쌓이고 숨쉬며 분단의 현실까지 사색할 수 있는 땅을 꼭 아이들이 걸었으면 좋겠다. 휙 지나치며 위협하는 자동차를 버리고 몸의 속도로 생각하며 천천히.

 

 

가을

 

뜨겁고 강렬한 것들이 식어갈 때 내 마음은 해가 들지 않는 숲길 같았다. 일터에서는 강박적으로 명랑 활발하다가도 퇴근길이면 마법이 풀렸다. 날마다 똑같은 왕복달리기가 지겨웠다. 어둑시근한 황혼녘에 정거장에 서있으면 주루룩 눈물이 흘렀다. 쑥대밭처럼 억세고 어수선한 삶. 견고하다고 믿었던 시간들은 썰물처럼 물러났다 사라졌다. 이쪽에선 서글픔이 저 너머에선 그리움이 불쑥 솟구친다. 내 핏속을 채우고 흐르는 생각들, 그것들이 발작적으로 먼저 설쳐대고 호들갑을 떨어댄다.

 

줄쳐진 땅 안에서 종종걸음 옥신각신도 싫었다. 삶의 잔망스러움, 비겁함, 교활함에 진저리가 나면 도시에 매인 목줄을 풀고 자연으로 몸을 던져야 한다. 산과 들, 바다는 자연결핍증을 회복시키는 충전소다. 하늘을 이고 땅을 딛고 몸과 마음이 일치단결하여 한걸음씩 옮기다보면 순수한 무아지경에 빠져든다.

 

강화읍을 지나 서쪽으로 이어지는 48번 국도변, 하점면 사무소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길가에 있는 나지막한 봉천산. 어미품을 찾는 심정으로 숲길로 접어들자 소나무와 쑥부쟁이가 반긴다. 솔잎 폭신한 외길을 따라 오르면 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 약수터.

 

밧줄을 따라 왼쪽 깔닥고개를 잠시 오르면 이윽고 훤출한 바위 능선. 황금물결을 쓸고 온 바람은 서늘하고 시원하다. 산의 어깨에 앉아 서쪽 수로 끝 바다에 둥실 떠있는 섬, 석모도를 바라본다. 숨을 고르고 다시 오르면 이윽고 정상. 천제를 지내던 돌로 쌓은 봉천대가 우뚝하다. 360도로 빙 돌아 파노라마로 보이는 경치는 최고의 눈 맛. 북쪽으론 바다건너 송악산의 뾰족한 봉우리가 선명하다. 새해가 되면 이곳은 강화인들이 동쪽 저 멀리 북한산 능선에서 솟아오르는 일출 맞이 명소다.

 올라온 길과 반대로 붉은 리본을 따라 북쪽 계곡을 내려가면 개성에서 옮겨 왔다는 소박한 고려 오층석탑과 마애석불을 만난다. 양지바르고 바람이 비껴가서 조용하다. 잔디밭에서 적막감을 동무삼아 차를 마시며 볕바라기를 한다. 몸은 착해지고 순해진 듯 스르르 졸음이 몰려온다. 쫓기듯 달려가던 마음도 덩달아 앉아 속삭인다. 눈뜨면 이어질 삶의 길, 꿈꾸듯 걸어가라 내게 이른다.

 

 

겨울

 

추수가 끝난 빈들이 황량하다. 바람소리만 아니면 온통 침묵이다. 쨍하니 시퍼런 하늘 구만리에서 발진한 기러기 편대, 기역자를 그리며 날아온다. 철조망을 사뿐히 넘어 논에 내려앉아 먹이를 먹고 쉬는 새들, 머릿속에 자동항법장치가 있다지. 주어진 정보에 아는 길이 아니면 떠나지 않으려 드는 인간들. 익숙한 것과 결별하고 낯선 곳에서 헤매지 않고선 새 경계, 또 다른 자신을 어찌 만나랴.

 

혹한의 강화 들판을 칼바람 속에 시퍼렇게 얼어가며 같이 걸은 친구가 서명숙이다. 줄 끊어진 연처럼 펄럭거리며 우리는 석 삼년을 걸었다 나는 여의도에서 출발하고 그는 집이 있는 방화역에서 한강을 따라 걸어 선유도 공원에서 만나 놀다가 헤어졌다. 봄에는 진달래를 따서 화전을 부쳐 동동주를 마시며 풍류여아의 삶을 노래했다.

 가을 휘영청 달밤이 아쉬워서 뽀얀 밤길을 걸어 달이 지는 쪽으로 걷다보면 동이 터왔다. 그렇게 걷기 공부를 삼년쯤 했나. 서명숙은 오랜 꿈이었던 산티아고 길 840킬로를 걷고 돌아왔다. 그리고 고향인 서귀포로 내려갔다. 잘 나가던 직업도 때려 치고.

외국을 보고서 비로소 매혹적인 제주 풍광이 세계적이라는 걸 깨달은 것.

 

그는 고향에 산티아고 못지않은 길을 내리라 작정했다. ‘올레’는 제주말로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길이다. 아스팔트가 깔리고 ‘자동차가 나가신다 길을 비키라’는 질주에 사람들은 밀려나고 더 이상 걷지 않는다. 도로는 자동차용이고 느린 걸음은 경멸의 대상이 된 것이다. 비바리는 사라지고 끊어진 길을 찾아내고 이어서 걷는 ‘제주올레’를 만들고 있다. 바다와 오름을 끼고 섬을 휘돌아가는 200킬로미터, 느리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길이 생생하게 살아나고 있다. ‘제주 올레’가 뜨자 덩달아 강화 길도 올레라고 부르게 되었다.

 

본래 땅에는 길이 없다. 길이란 걸어가면서 만들어지는 것. 낯선 곳에서 오감으로 ‘나의 길’을 찾는 건 아방가르드다. 몸 떨리는 환희심은 덤. 다시 봄이 오고 있다. 봄꽃 한 무더기에 담장을 뛰어 넘어 강화올레로 오사이다~~

맛집은  읍내 우리옥. 신아리랑. 푸른언덕

차편은 신촌서 빨간 광역버스.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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