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도 넘은 일이니까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것이지만, 나는 참 ‘막 나가는’ 여자애였다. 이후 막 나가는 아가씨로 진화해버렸고 부모님사이가 그럴싸해지기 전에는 참 힘들었다. 이명박 장로님을 위해 새벽기도를 드리던 보수적인 부모님은 요즘 살짝 발그스름한 정도로 적화되셔서 지방선거 하루 전 ‘당선되는 표만이 의미 있는 것이 아니고 네가 지지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사표가 아니니 소신 있게 찍으라’고 야무지게 독려하시는, 아니 언제부터 나의 부모가 이렇게 성숙한 시민의식이 있었나, 하고 감탄할 만큼 변했다. 그러나 10년 전쯤까지는 서로 죽일 것 같은 사이였다.

고등학교도 희한하게 때려치우고 대학을 떠들썩하게 들어간 다음 공부도 안 하고 빌빌대면서 우울증이 갈수록 심해져 툭하면 죽겠다고 주변을 귀찮게 했지만 정말로 죽어버릴까, 싶어서 심하게 괴로웠다. 그맘때야 다들 그렇지만 나는 내가 생각해도 심하게 귀찮은 인간이었다. 한 번은 싸구려 알약을 100알쯤 털어넣고 잘 드는 칼로 손목을 따고 의식이 왔다 갔다 하는데 그 비몽사몽 중에 안절부절못하는 우리 개가 보였다. 제일 오래 기른 줄리아노는 그때 꼬리와 다리가 기역자로 꺾어진 채로 우리 집에 온 강아지였는데, 나이가 든 지금 심술만 살짝 늘었을 뿐 그때부터 워낙 다감한 성품이었다.

그 다감한 개는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한심한 주인을 핥다가 주둥이로 툭툭 밀었다가 어쩔 줄 몰라 날뛰고 있었다. 덕분에 장판에 피 묻은 개 발자국 천지였는데 우리 개도 피 칠갑이 되어 있었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뭘 하고 있나, 이런 미친 년. 물론 그 이후로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피투성이가 된 채 낑낑 우는 개를 보니 집어치우고 정신 차리자, 싶어서 비틀비틀 일어났다. 개는 바닥에 시뻘건 발자국을 남기며 계속 따라왔다. 간신히 밖에 기어 나와 제 발로 응급실에 갔다. 위세척을 하면서 이게 다 뭔가, 싶어 스스로가 한심하기 그지없었지만 그 피투성이 개 발자국이 없었던들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길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열 살이 되어 회색 털이 된 그 개는 여전히 다감하다. 목에 술통을 매단 세인트 버나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때로는 푸들도 구조견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감동의 물결 출렁출렁.
그 녀석이 연세도 지긋하게 살아있단다.
어여쁜 일이다.